이상한 셈
참 이상도 하지. 동생네 집 주하이에서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손가락을 꼽으며 하루, 이틀 사흘... 을 셈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쉽고 아까워서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셈하는 걸 잊었다. 잊었다라기보다 아예 셈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같다.
동생네 집에 갈 땐 며칠 전부터 짐을 챙겼다면, 집에 와서는 아직도 트렁크 정리를 하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 챙기랴, 남편 챙기랴 바쁘기도 했지만 집에 왔으니 익숙하고 낯익음을 즐기기 위해서다. 나무늘보처럼 느리적 느리적 늘어져 있다.
여긴, 집이다.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부족한 잠부터 채우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장보기. 계란과 치즈 등 부모님 냉장고에 채워드릴 장과, 울 냉장고에 채울 장을 보니 장을 본 양이 한 차가 된다.
오랜만에 식사를 챙겨 드렸더니, 어쩐 일로 엄마가 "고맙다"라고 하신다. 열흘 동안 외로우셨나? 부모님을 챙기고, 식사를 챙기고, 집 안을 돌보는 일이 익숙한 일. 이제야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밥 챙겨 먹느라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중국에 다녀온 지 오늘이 사흘째. 틈틈이 동생을 생각한다.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주하이, 지금쯤 동생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겠네. 오늘은 토요일이니, 오후엔 제부랑 상가를 산책하겠지. 저녁은 오늘도 외식을 하려나? 눈을 감으면 아파트에 심긴 꽃나무와 조경수가 생각나고, 베이산의 카페와 레스토랑. 쇼핑 몰과 마켓도 눈에 삼삼하다. 강가의 풍경과 버스를 타기 위해 건너던 긴 강다리도 생각난다. 인터넷에서 택배를 한 니트는 참 잘 산 것 같다 하고, 청바지는 아무래도 좀 비싸게 산 것 같다 하며 마음은 여전히 주하이에서 맴돌고 있다. 추워야 할 한국의 겨울이, 여전히 봄날 같은 따뜻한 날씨 때문인가?
2주 만에 성당엘 갔다. 판공성사를 하고 반가운 교우들을 만났다. 이제야 일상이다. 눈에 익은 풍경과 조용조용한 말소리(성조 때문일까? 중국어는 늘 큰 소리로 들렸었다). 늘 사용했던 한국말이 또 이렇게 편하게 느껴질 줄이야. 무엇 때문일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동생과 함께한 시간이 에너지였음을 깨닫는다.
동생은 4월에 온다고 했다. 작년엔 동생을 손꼽아가며 목 빼고 기다렸었다. 그런데 동생과 함께 지내며 에너지를 꽉 꽉 채워온 지금은 뭐, 4개월쯤이야 하고 있으니, 참 이상한 셈이다. 쾌적한 곳에서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하며, 제부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동생이 참 편안해 보였다. 그걸 보고 왔으니 나도 안심이다.
동생아, 함께해 줘서 고마웠구나. 얼마 남지 않은 4월, 곧 또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