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쓰기

실과 바늘

요술공주 셀리 2023. 12. 22. 13:00

먼 곳에서 산 실이다. 비행기로 4시간을 날아가 사 왔으니 참 멀리서도 사 왔다. 그 실로 스웨터를 짜고 있다. 주해에서 주문해서 동생네 집으로 택배로 받아온 실이다. 중국어를 모르니 인터넷에서 색상만 보고 주문했더니 생각한 것과 다르다. 면과 아크릴이 섞였다는데 생각보다 가는 실이다. 그래도 한국과 달리, 실 굵기에 맞는 바늘과 줄자를 택배상자에 함께 보내 준 세심함이 참 고마웠다.
가느다란 실로 뜨려니 도무지 떠도 떠도 제자리걸음. 열흘째 스웨터에 매달려 있다.

엊그제,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윗집 동생과 옆집 형님은 우리 집 단골손님. 손에서 놓지 않는 스웨터를 떠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형님이 뜨개에 관심을 보인다. "딸이 짜준 목도리가 너무 길어. 혹시 줄여줄 수 있을까?"조심스레 물으신다. "그럼요. 그럼요." 근데, 남는 실로 리본 목도리를......" 형님이 짧고 간편한 리본 목도리가 마음에 드셨나 보다. "그럼요. 그럼요"
이튿날. "주말에 애들이 크리스마스라고 온대서 만들었다."며 직접 빚은 왕만두 한 접시와 그 목도리를 가져오셨다. "급하지 않다면 스웨터 완성하고 해 볼게요." 하고 목도리는 한 켠으로 밀쳐 두었다. 목도리보다 요리장인의 만두가 먼저 보였으니 엊저녁은 맛있는 왕만두로 포식을 했었다. 

성탄절.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이웃에게 보내고, 선물도 주고받았었는데......
아이들 어렸을 때는 의미 있고 분주한 날이었다. 칠면조 대신 치킨이라도 먹었고, 케이크를 자르고 촛불도 불었었는데......
성당에 가지 않던 두 아들도 성탄 미사엔 꼭 함께 참석했었는데......
성탄절 생각을 하면서, 내 스웨터보다 형님 목도리를 먼저 떠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이왕이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도리를 풀으며 생각에 잠긴다. 형님은 이웃이었지만, 참 어려웠었다. 가까이 살았는데도 왕래도 없었고 성당교우로 처음 만났을 때도 대면대면 했었다. 그랬던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성당 모임을 하고, 윗집이 이사 오면서 조금씩 가까워진 것 같다. 1년여의 시간이 쌓이고 생긴 일이다. 나눔에 인색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걱정도 서로 나누게 되었다. 형님은 이웃을 잘 챙기고 특히 어려운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이다.

중국에 갔을 때, 엄마 때문에 119를 부르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었다. 열이 난다고, 몸이 차가워졌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랍고 걱정이 되었던지. 그때 생각 난 사람이 형님이었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기꺼이 도와준 사람이 형님이었다. 부모님 식사를 챙겨 드리고 날마다 찾아가 잘 계신지 살펴주었단다. 이웃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마음이 놓였었는지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윗집 동생과 그 옆집 형님이 그런 사람들이다.

형님의 목도리를 살포시 목에 둘러본다. 완성한 리본 목도리도 둘러본다. 예쁘다. 따뜻하다. 목도리니까 당연히 따뜻한 것이 아니라 형님 거라서 그렇다. 아니, 이제 형님 말고 언니 하련다.
맏딸인 나는 언니가 없어, 언니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었는데 이제 나에게도 언니가 생겼다. 형님, 아니 언니, 우리 실하고 바늘 하며 살까요? 이왕이면 실과 잘 맞는 바늘, 우리 그렇게 어울렁 더울렁 함께 살아가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