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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짝의 송년회

요술공주 셀리 2023. 12. 26. 13:25

"언니, 11시요. 꼭요."
옥이의 초대로 산골짝 삼총사가 1달 만에 뭉쳤다. 11시에 만나 눈 쌓인 뒷산에 등산을 했다.

윗집 동생은 일본에, 난 중국에 다녀왔다. 하필 두 집이 같은 시기에 출발한 여행으로 윗집 언니가 힘들었다고 한다. 강원도가 텅 빈 듯 허전하고 적적했다고, 두 동생의 빈자리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눈 덮인 등산길은 험난한 빙판길이었다. 골짜기 아래에서 흐르는 물이 추위에 얼어붙었고 엊그제 내린 눈이 그 위를 살짝 덮었으니, 한 발자국 밟을 때마다 미끄덩미끄덩. 되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우리 사전에 포기는 없다 keep going!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 눈 쌓인 산이 이뻤고 눈 덮인 마을이 이뻤다.
그러나 하산하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엇, 빙판이네 하면서 동생이 꽈당 넘어진 것이다. 큰 웃음을 준 동생은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하하하, 호호호 오랜만에 웃음을 퍼뜨리고 무사히 하산을 했다.

저녁 만찬을 위해 칼을 뽑았다. 토종닭 두 마리를 깨끗이 손질하고 매콤한 양념에 재워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고 정성 가득 한 스푼, 사랑 한 스푼까지 더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요리 고수들 앞에서 솜씨를 발휘하려니 시험을 앞둔 학생 같아 마음을 졸였다.  

동생은 피자와 해물전을, 언니는 도토리묵과 매생이 굴국을 준비해 왔다. 배달이 되지 않는 산골짝의 망년회는 hand made 음식으로 시작되었다.
"형님, 아니 언니 묵이 참 맛있어요."
"세상에, 어떻게 집에서 피자를 만들었대."
"술안주엔 해물전이 최고지."
"닭볶음탕이 간이 딱 맞네."로 1차전은 먹방.
2차전은 서로에 대한 칭찬이다. "막내가 보배야. 언니들 챙기느라 고생했고, 맨날 좋은 곳 찾아줘서 고마워." "언니, 동생들 늘 챙겨주고, 귀한 음식 해서 초대해 줘 고맙습니다." 호호 하하 껄껄껄. 서로를 배려하고 믿음과 신뢰로 뭉쳐진 이 모임을 어찌해야 할꼬?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 시간을 어찌해야 할꼬? 마음이 맞으니 세상이 다 훈훈하다.

내년을 더 기대하는 송년회의 밤이 익어가고 있다.
"우리 내년엔 발왕산 가요." 내년이라 함은 일주일 후 다가올 1월을 말한다. "우리 신년 모임도 하자." 묵밥이랑, 탕수육이랑, 잡채 만들어 먹을까? 우린 봄도 오기 전에 꽃을 심고, 나무도 심고, 모종도 이미 다 심었다. 경치 좋은 곳도 함께, 맛있는 곳도 함께, 힘든 일도 함께하자고 했다.
칡흙 같은 밤에 떠오른 달이 웃음소리로 꽉 차올랐다. 우린 늘 보름달. 함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