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자기야, 빨리 가자."
점심 후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남편을 졸랐다. 영상의 날씨. 가벼운 점퍼차림도 무난한 날씨다.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 모자와 장갑을 필수. 등산화까지 신고 삽과 리어카를 챙겨 아래땅으로 내려갔다.
쿠르릉 쿠르릉 한겨울에 천둥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앞 집에서 축대를 쌓으려고 트럭에서 돌을 쏟아내리는 소리였다. 한겨울에 뭔 공사지? 했는데 비가 오면 언덕배기의 흙이 자꾸 유실되어 나무가 쓰러진다고, 그래서 축대를 쌓는다고 했다. 3개월 전에 신청했는데 이제야 허가가 나서 한겨울 공사를 하고 있다고......
포클레인으로 하는 '돌 쌓기'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계로 하는 작업임에도 멀리서 보면 꼭 사람 손으로 하는 작업처럼 섬세하고 정확하다. 큰 돌멩이가 블럭처럼 쌓여서 축대가 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 일쑤. 그런데, 어느 날 덤프트럭이 흙을 내려놓고 있지 않은가? 반가움에 앞집에 전화를 했다. "우리도 흙이 필요한데 한 차만 사달라." 부탁했더니 며칠 뒤, 산에서 캐온 흙이라며 우리 집 마당에 흙을 내려주었다. 자기 산에서 넉넉히 파 온 흙이라고 충분히 쓰라며 한 트럭을 가져다준 것이다.
작년에 만든 계단식 화단과 비스듬한 구릉모양의 우리 집 화단 역시, 비가 오면 흙이 쓸려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흙을 채우면 좋겠다 싶었는데 한 차를 부르자니 너무 많고, 밭의 흙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해서 1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앞 집 덕분에 소망을 이뤘다. 그러니 날씨가 문제랴? 눈이 오더라도 해야 할 일. 그런데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까지 받쳐주니 신이 나서 남편을 채근했던 것.
어디부터 흙을 채울까? 법면 옆 화단은 너무 넓으니 오늘은 계단식 작은 화단부터 채우자라며 차고 옆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남편이 첫 삽을 뜨며 한 말은 "어이쿠, 흙이 얼었네" 다. '퍽'하고 삽을 들이댔으나 '탱'하고 튀어나온 멋쩍은 삽질. 마음만 봄날이었지, 현실은 겨울이었다. 속상한 현타!
"그러게, 봄에 하자고 했잖아."
남의 속도 모르고 남편이 한 소리를 한다.
"그렇단 말이지? 예서 말 수는 없다. 여자가 삽을 꺼냈으면 이거라도 해야지."
얼지 않은 흙더미 표면에서 살살 긁어낸 흙을, 얼음 위에 뿌려주었다.
"얼음아, 빨리 겨울 좀 녹여주라고."
이른 봄. 아니 한겨울의 삽질은 쓸데 없이 펄 펄 힘만 넘쳐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