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하는 사회문화운동(이응우)
미술로 하는 ‘사회문화운동’
미술사에서 새로운 주의나 경향을 만나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금강유역의 작은 도시 공주에서 ‘야투’에 의해 오랫동안 지속된 미술행위는 전례 없이 새로운 사건 중 하나다. 특히 서구지향적 미술문화가 고착된 곳에서 '자연미술'이라는 서구미술사에 근거가 없는 새로운 방법을 개진하기에는 우리의 문화적 토양이 너무 척박했다. 그러나 야투의 동인들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의 자연미술을 소개해왔으며 이러한 시도는 금강에서 시작된 자연미술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켜 현재 국제야투(YATOO Imternational 또는 YATOO-i)는 39개국으로부터 162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그 본부는 공주의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안에 있다.
나는 자연미술 연구가 또는 메신저로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대중 앞에 서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때마다 반복된 질문은 “당신은 무엇으로 생활하는가?”였다. 그들이 보기에 자연미술은 가치 있어 보이지만 작품원본(Originality)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소통과 재충전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적 풍요나 보상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자연에서 찾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 위력을 알기에 개인이든 국가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돈이 아닌 다른 것이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자연미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고승현 ‘소와 나’, 1983

자연미술은 처음부터 소통구조가 없었다. 그것을 일찍이 감지한 사람들은 이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실 생활을 지탱해줄 방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야투가 40년 넘게 지속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참여자가 있었으나 궁극적으로 회원배가가 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야투 창립 당시 후배들을 선도했던 한 작가도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자연현장의 작업보다는 실내에서의 평면회화로 회귀하고 있었다. 그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최근 어느 미술상 수상소감을 말할 때도 “나는 자연현장의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나 비디오는 원본이 아닌 부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회원들에 의해 이 일이 계속된 것은 현장연구를 통해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체험했으며, 자연과 동행하는 미술의 즐거움과 가치를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작업 자체에 의미를 두었으며, 심지어 원본이 원래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응우 EynAli '산의 길' 이란 테브리즈, 2016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인위적 산물로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기에 적당한 때 사라져주는 것이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학적 사유는 자본주의 트렉에 맞지 않는 새로운 것이다. 따라서 많은 지식인들은 후기산업사회 인간의 욕망에 의해 도래한 ‘야만의 시대와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등 지구 위기를 목도하며 문제해결의 실마리 중 하나로 자연미술의 교육적 수용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응우 'Gair Lock의 아홉개의 돌' Scotland,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