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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을 준비하며(이응우)

요술공주 셀리 2024. 2. 6. 12:25

이응우 '기원(A Bow)' 영국 다팅턴 2018 

이 작품은 2018년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만남을 했던 날 아침 영국 남서부 Dart-River에서 예술유목을 하던 중 깨끗한 강물의 밑바닥에 둥근 모양의 주발을 돌로 만들어 놓고 민족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 선언이 나오도록 천지신명께 예를 올리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중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다.
 

 
 

충남갤러리 개인전을 준비하며
 
나는 오래 전, 스스로 한 가지를 결의했었다.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도 ‘벽, 바닥 그리고 의식’이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시대의 고통을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그림부터 추상 작업 등을 섭렵하며 10년 넘게 열심히 작업을 했으나, 30년 전 중요한 한 축이었던 평면작업을 중단하였다. 그 무렵 “앞으로 자연을 떠나선 어떤 전시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금기를 깨고 서울전시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충남미술인을 위한 전시 공간 공고를 보고 응모하게 되었다.
 
지금 기획하는 나의 전시는 자연에서 발견하거나 얻은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풀어놓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왜냐하면 자연미술운동은 단지 미술을 넘어 사회문화 운동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들이나 산, 또는 강과 바다에 은닉되어 스스로 소멸하도록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야투 창립부터 초기 10년은 자연미술에 대한 알음알이를 하던 시기였다. 작업을 하면서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가늠치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그 무렵 이론적 체계를 세우려면 철학, 미학, 노장의 자연주의 사상 등 많은 것을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현학적이지 못한 탓에 어느 것도 결행하지 못하고 현장 작업에만 매달렸다.
 
 

이응우 '드로잉(Drawing)' 한국 공주 2014 

작은 도랑이나 개울에 가면 모래톱과 정겨운 물의 흐름을 만나게 된다.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시시껄렁해 보이지만 모래 사이 수면에 투영된 하늘과 구름 주변의 정경 등은 충분히 정서적이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긴 세월 지난 뒤 돌이켜 보니 그때 이론에 매달렸더라면 오늘의 작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의 직관력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창작의 결정적 순간은 인성과 신성의 접점이다. 정말 좋은 작품의 최초 감상자는 늘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린 것이 좋은 작품이다. 선지자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언젠가 자신의 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선승(禪僧)이 선방에 들어 우주의 진리를 꿰뚫고 해탈하지 않던가!

 

거울 앞에 서면 스무 살 청년은 간곳없고 터럭이 허옇게 세어버린 중년이 다가선다. 아! 어쩌다 나를 만나 그 꼴이 되었는가! 연민이 스쳐 지나간 뒤에 그래도 헛되진 않았다는 위안이 뒤를 따른다.

 
 
이응우 '여름 나기(Estivate)'작업실 2023

펜데믹의 긴 터널 끝에 기록적 장마 그리고 이어진 불볕더위, 정말 가공할 기후환경과 만났다. 작품이 아니고도 마당의 잔디를 가꾸고 작은 연못과 텃밭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이미 여름은 나의 피부를 다양한 색으로 변화시켰다. 그을린 역대급 내 모습을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