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 나라, 땅콩 나라
"언니, 글쎄 쥐똥이 남산만 했다니까"
"남편이 서랍을 열다가, 기절할 뻔했다고. 쥐랑 눈이 딱 마주쳤대잖아."
동생은 지난 7일에 여기 내려왔다. 그날 이후, 동생은 입만 열면 쥐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안 곳곳이 쥐똥과 오줌 냄새로 진동을 하니 쥐를 찾아 어제는 냉장고 뒤를, 오늘은 싱크대 밑을 탐색하고 있단다. 집안을 다 뒤집어 놓아, 6.25 이후 난리는 자기 집일 거라고......
얼마 전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세탁기와 가스레인지가 도통 먹통이라며 고쳐달라고 하셨다. 남편이 내려가 세탁기와 레인지를 고치다가 발견한 쥐똥. 싱크대 밑에, 세탁기 밑에 쥐똥이 있었다. 청소기를 돌릴 때도 가구 밑에 쥐똥이 있더라고 동생에게 말을 했더니 동생은 쥐약을 사들고 내려왔다.
"언니, 우리 집이 쥐의 천국이었어. 쥐가 제일 좋아한다는 땅콩과 곡식이 거실 가득이었잖아? 그러니 얘들이 얼마나 신이 났겠어?"
엄마의 최애 간식은 땅콩이다. 호주머니에 땅콩을 넣고 다니며 늘 몇 알씩 꺼내 드신다. 기분이 좋으면 센터의 요양보호사에게도 나눔 하시고, 손주가 오면 애지중지하는 땅콩을 기꺼이 나눠주신다. 그래서 작년엔 엄마 밭과 우리 밭에 땅콩을 심었고, 제법 많이 수확해서 엄마의 기쁨이 되었었다. 그런데 결국 이 땅콩이 쥐를 부르게 되었다. 쥐가 환장을 하는 먹이가 땅콩이라니, 거실 곳곳에 놓여 있는 땅콩에 쥐똥범벅이었다고 한다.
"언니, 엄마가 쥐엄마였어. 꽃병엔 팥이 가득. 항아리마다 콩이며, 곡식이 넘쳐났으니 우리 집이 쥐의 천국이었다니까."
엄마는 땅 한 뼘만 보이면 강낭콩을 심고 팥을 심었으니, 콩과 팥이 엄마의 소일거리였다. 익으면 하나 까서 모아두곤 했는데, 문제는 땅콩도 곡식도 뚜껑을 덮지 않고 방치해 둔 것. 먹이 냄새를 맡은 쥐가 두꺼운 벽을 뚫고 침임 했던 것이다. 막상 들어와 보니, 넓은 거실은 따뜻하고 하루종일 사람은 없는데 천지가 곡식창고였으니, 여기가 천국이로다 하고 아예 눌러살았던 것.
"언니, 쥐약은 분명 없어졌는데 쥐가 안 보여." 아이고 동생아, 넌 설날에도 쥐타령이구나.
명절이라고 귀국해서 5일 째, 대청소만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좀 더 살폈어야 했는데, 뚜껑도 닫아 놓고, 청소도 더 자주 했어야 했다. 내 소홀함 때문에 동생이 고생하는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언니, 근데 끈끈이에 붙은 쥐는 한 마리뿐이야. 두 마리가 나타나서 남편이랑 몽둥이를 들고 쫓아갔는데 우 씨, 너무 빨리 도망가서 못 잡았잖아."
동생 집은 쥐 때문에 환골탈태를 했다. 냉장고를 드러내고 구석구석에 쌓인 쥐똥을 치우고, 서랍장을 통째로 밖으로 빼냈다. 식탁 옆의 장식장도 버리고 쥐의 흔적이 있는 곡식도 버렸단다. 냄새나는 음식과 쓰레기통을 치우고, 이 참에 냉장고도 비우고, 씽크대 속의 잡동사니도 다 정리했다고 한다. 넓은 거실이 운동장으로 변했으니 사람 사는 공간은 더 쾌적해졌다. 그런데 쥐는......?
그나저나 그 많은 쥐약이 없어졌다며 성과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카톡이 왔다.
"ㅋ,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탁 밑 끈끈이에 큰 쥐가 붙어있네."
"언니, 6.25 때 전쟁은 전쟁도 아니여."
그러게. 먹을 것을 치워버리고 왠만한 구멍은 다 막았으니, 예들이 제발 이사를 가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면? 아이고, 우짜면 좋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