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공주의 두 얼굴
어젠 night owl(늦게 자서 늦게 일어난 부엉이), 오늘은 early bird(일찍 일어난 부지런한 새)다.
비가 눈으로 바뀐 강원도는 밤새 차곡차곡 하얀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부지런한 엘사공주 덕분이다. 강원도에 내려와서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다. 소나무 가지가 눈 무게로 부러질 정도의 많은 양이 내렸다.
"Oh my god." 설국의 아침을 더 어떻게 표현하랴. 산도, 나무도 온통 하얀 색칠을 하고 있으니 세상이 환해졌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앗, 엄마'. 부모님이 센터에 가실 때 눈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 '부모님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나자 나는 전사로 변신을 한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손에는 창 대신 '밀대'를 장착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었지만, 어머나 이걸 어쩐다? 창고에 있는 무기(밀대)를 가지러 가기도 벅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엊저녁에 밀대를 미리 갖다 놓을 걸......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눈 길을 헤치고 간신히 밀대를 가져와 눈을 치운다.
그런데 뭐야? 수분을 듬뿍 머금은 눈이 턱 버티고 움직이지 않는다. 20Cm가 넘게 쌓인 눈의 무게로 첫걸음부터 대치상황. 그래? 밀어낼 수 없다면 퍼낼 수밖에...... 눈을 삽처럼 퍼내기도 처음이다. 전세는 이미 내편이 아닌 걸 파악한 나는 작은 밀대로 무기를 교체하고 낮은 포복으로 굴 하나를 간신히 뚫었다.

부모님이 센터에 가시려면 엄마집부터 우리집을 거쳐 옆집까지 1km가 넘는 길이의 눈을 치워야 한다. 긴 장정이다. 한 삽 한 삽 퍼낼 때마다 "읏차, 읏차" 비명? 이 절로 난다. 휴~ 이걸 어떻게... 이걸 언제 다하지? 하고 있을 때 부앙~~! 이장님이 눈차(트랙터)를 끌고 나타나셨다. 탱크 같은 눈차가 휙 하고 지나가니 순식간에 1m가 넘는 도로가 생겨났다. "감사합니다." 꾸벅 절을 하고 나니, 그제야 엘사공주가 보인다. 공주님 사는 설국의 아름다움이야 엘사공주만 하랴마는 눈 덮인 산과 눈꽃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럴 때 동생과 함께라면 참 좋을 텐데...... 이 아름다운 설경을 동생도 보면 참 좋을 텐데......



이장님의 탱크로 눈과의 싸움은 1:1 동점이 되었다. 그러나 탱크가 지나간 도로는 얇은 눈이 한 겹 쌓인 상태. 낮동안 얼기라도 한다면 빙판이 될 게 뻔한 일이다. 이제 밀대로 눈을 뜯어내는 2차전을 시작한다. 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바닥에 눌어붙어 1차전보다 2배의 힘이 필요하다. 30여 cm의 길을 1km 길이로 만드는 작업은 말 그대로 고역!
콧물 범벅, 땀범벅, 눈범벅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2시간여의 긴 작업이었다.

난로를 피우고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눈 때문에 오늘은 9시 30분에 모시러 갑니다."센터의 요양사에게 전화가 왔다. 식사를 하다 말고 엄마집으로 가서 이 내용을 전하고 돌아오는데, 눈 쌓인 강풍경이 또 절경이다. 어머나, 이건 찍어야 해.


난로에 덥혀진 따뜻한 거실에 앉아 불멍을 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눈 쌓인 설경을 바라보면서, 엘사공주의 눈부신 공연을 만끽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행복이 넘쳐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