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사를 드렸다. 7시. 새벽이라기엔 아침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성당 가는 인적 드문 도로엔 자동차 대신, 자욱한 안개가 점령을 했다. 해가 떠오른 하늘엔 조각구름 떼가 보석처럼 박혀있었고......미사를 드리는 교우들 중엔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부님도 마스크를 착용하셨다. 일교차 큰 날씨엔 감기 조심이다. 그런데 그 일교차 때문에 아침마다 아지랑이를 만난다. 봄의 대명사인 아지랑이를 가을에 보는 것도 처음이다. 다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니, 부지런해야지만 볼 수 있다. 아지랑이 옆 연통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춥다며, 성당에서 귀가한 남편이 난로를 피웠으니....... 그런데 그때, "오늘 오후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니...... 난로 앞에서 듣는 늦더위 ..
나도, 이웃도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한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었다. 어젠 아주 오랜만에 삼총사가 만나 강변을 산책했다. "총각무 김장 했어요? 우린 엊그제 끝냈어요." 아, 벌써 김장할 때가 되었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단어. 김장. 총각무는 때를 놓치면 무 중앙에 힘줄이 생겨 맛이 없어진다고. 아이고, 그렇구나 하며 오늘은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했다. 밭에 내려가 총각무부터 뽑았다. 어느새 제법 자랐다. 미리 뽑아 한 번 김치를 담았으니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았다. 내려간 김에 가지와 파프리카 나무를 뽑아냈다. 여름의 끝자락까지 정리를 한 셈이다.무를 다듬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다. 뭐든 끝은 있는 법. 여유로운 시간을 천천히 즐길 때쯤 다듬기는 마무리되었고, 농약을 치지 않았으니 흙을 털어낼..
"어? 아랫집 2층에 불이 켜져 있네?"남편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말했다. 동생네 2층에 불이 켜질 수도 있지. 시큰둥 넘겼는데, 아침에 밭에 내려갔다 낯이 익은 흰색 자동차를 보고서 조카네가 온 걸 알았다. 중국 손님을 치른 지 하루 만에 또 손님이라? 물론 아들 내외와 손녀들이니 손님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동생의 피로가 풀리기 전이니 말이다.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손녀들이 와락 내게 와 안겼다. 11살, 7살 손녀들은 나더러 꼬꼬할미란 애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모님, 혹시 뜨개실 필요하세요?" 월말에 이사를 앞둔 조카며느리가 짐정리를 하려고 내게 내민 실은 수세미실과 뜨다 만 노란색 아크릴실이었다. "애들 가방을 뜨다가 바빠서 그만 여전히 미완성이에요." 하는 며느리의 노란색 실과 뜨다만 가방을 ..
10월 초인데도 우린 난로를 때고 있다. 으슬으슬 추운 밤의 기온은 낮과는 천양지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난 밤이면 난로 옆에 껌딱지로 붙어 있다. 그런데 이 날씨가 낮엔 기가 막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하늘은 높고 파랗고 햇볕은 따사로우니, 오늘도 난 꽃밭에서 노닐었고, 꽃씨를 받았다.가을의 전령사인 국화가 어느새 만발했는데, 여름꽃 섬색시와 한련화가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추석에 손주가 뜯었을 땐 녹색이었던 풍선초 씨앗이 제대로 까맣게 여물었다. 풍선초는 풍선같이 생긴 모양도 예쁜데 씨앗마저 앙증맞다. 탱탱한 풍선을 톡 터뜨리는 게 재미가 있어 씨앗 열 개를 인터넷으로 구매했었다. 택배비가 더 비싼 풍선초가 다글다글 풍선을 매달았으니 대박이로다. 택배비가 아깝지 않은 풍년이다.멜라포티움과..
동생이 바쁜데, 나는 또 왜 바쁜 건가? 옆집 사는 동생네에 연일 손님이 왔다. 엊그젠 중국에서 가족 네 명이 방문해 2박 3일을 했고, 그 가족이 떠나자마자 연변 출신 손님 1명이 또 내려왔다. 이들은 모두 제부의 중국 지인들이라고 했다. 연변 출신 손님은 내 집에서 1박을 했다. 덕분에 나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중국어를 못하니, 그들과 소통은 힘들었지만 11살, 7살 형제와는 호박과 가지 따는 체험을 함께 했었다. 동생 부부는 손님과 함께 설악산엘 갔다. 중국 아이들 목소리도 함께 떠난 산골짜기엔 정적이 또 일상이 되었다. 이제야 나도 밭에 내려가고, 못다 깐 땅콩 껍질을 벗겨냈다. 그러다가 시작한 일. 여름옷을 정리했는데, 이게 도미노가 되어 급기야 살림을 정리하게 되었으니......강원도에 이사 ..
설악산에 첫 단풍이 들었다더니, 어제와 확연히 다른 오늘. 낮아진 기온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 내 열였던 창문도 열지 않았고, 집 안에서도 겉옷 하나를 더 껴입었다. 아침 일찍 밭에 내려가는데 손끝이 살짝 시렸다. 하늘도 완연한 가을이다.가을꽃 풍년이다. 보랏빛 아스타와 구절초, 국화가 날마다 풍경을 더한다. 추명국은 언제나 우아한 귀부인 같다.언제 초록을 벗었을까? 마음 급한 나무들은 어느새 알록달록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추석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10월이다. 강원도는 10월에 김장을 한다. 땅콩과 고구마, 고추를 딴 밭엔 이제 김장거리만 남았다.백당나무와 대추, 꽃사과와 수세미가 가지마다 가을을 매달았다.한 장 남은 달력이 안타깝다고 하얗던 목수국이 땅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억새도 아직 ..
"어제 무리를 했더니 오늘은 할 일이 없네""밭에 남은 것도 김장용 채소만 남았지?"남편이 심심한가 보다. 과일과 커피까지 마시고 데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아, 할 일이 있지. 우리 땅콩 껍데기 까야해" 하면서 어제 캐서 알알이 떼어낸 땅콩을 데크 위에 갖다 놓았다. "이렇게 하면 돼" 하며 내가 시범을 보였다. 난 아래에서, 남편은 의자에 앉아 땅콩 껍질 벗기기를 시작했다. 땅콩은 중노동의 연속인 것을......처음엔 맨손으로 했으나 마찰에 의해 엄지손가락이 금세 빨개졌다. 안 되겠다. 좀 답답하지만 장갑을 끼고 천천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딱새 한 마리가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잘 생긴 땅콩 한 개를 물고 날아갔다. "아무래도 저 딱새, 우리 집에서 집 짓고 새끼 낳은 애인..
추석에 내려온 손주에게 땅콩 캐는 체험을 해주고 싶어, 며칠 전 미리 캐본 땅콩은 대부분 잘 여물었었다. 명절끄트머리라서 피곤하지만 추석에 비가 왔으니 땅밑에서 썩기 전에 땅콩을 캐기로 했다. 작업복을 입고 남편을 대동하여 밭으로 갔다. 호미로 검정 비닐을 쓰윽 갈라서 땅콩 줄기를 부여잡고 쑤욱 뽑아내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뽑으면서 떨어진 땅콩을 줍고, 긴 고랑의 많은 양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이 작업 역시 쪼그리고 앉아하는 일이니, 덥고 지루했다. 그러나 쌓인 땅콩을 볼 때는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으니......뽑은 땅콩을 손으로 일일이 따는 작업도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일일이 수작업으로 딴 땅콩이 양동이에 수북수북 쌓여갈 땐, 뿌듯하고 기뻤다. 그렇게 딴 땅콩이 두 양동..
꿈만 같았던 1박 2일. 아들네와 손주가 귀경을 한 집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손주가 내려온 날과 추석인 어제만큼은 풀 뽑을 일보다 부엌에서 분주했고, 배추와 무를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손주와 놀았으니, 밭에도 1박 2일 만에 내려왔다. 아, 그래도 어젠 손주와 땅콩을 캐려고 아주 잠깐 내려왔었네. 내 손 위에 고사리 같은 손주의 손을 업어 땅콩을 캤을 때, 세상을 다 가진듯한 손주의 표정. 그런데, 그 땅콩을 데크의 난간에 널었을 때, 딱새의 출현으로 우린 축제 분위기였었다. 사람들이 코 앞에 있는데도 딱새가 날아와 땅콩을 먹고 있었으니...... 손주는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와 아들이 처음 본다며 그 광경을 즐겼으니......"잠깐만 기다려봐" 하고, 난 깐 땅콩을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손주..
"언니, 바빠요?" 윗집에서 전화가 왔다. 옆집에서 차 한잔하자고 했다. 할 일이 있었지만 잠시 멈추고 옆집으로 올라갔다. 이게 얼마만인가? 자주 보던 삼총사가 한 달여 만에 뭉쳤다. 옆집 언니는 농사지은 배를 큰 접시 가득 깎아 내왔다. 배는 기가 막히게 달고 육즙도 풍부해 매우 맛이 있었다. 언니는 벌써 우족탕도 하고, 꽃게도 손질했으며, 명절 김치도 다 했다고 했다. 나도 지지 않고 "저도 김치 담그고, 갈비탕과 밑반찬을 해놨답니다" 했다. 윗집 옥이만 "언니들, 부럽네요. 저는 아직 아들이 싱글이니...... 가족들 다 만나서 좋으시지요?"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났다. 할 일이 많은데도 기분이 좋으니, 손주가 셈하듯 나도 카운트를 한다. 하룻밤만 자면 손주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으니 음식을 만드는..
뭘 얼마나 사려고 자동차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홍천 장에 가려고 하는지...... 남편이 2년여 근무했던 곳이니, 남편이 앞장서서 우린 홍천으로 향했다. 동생 부부와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고수부지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건너니 재래시장이 나타났다. 오전 시간대여서일까? 추석 대목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많이 다니는데, 사는 사람이 없어. 물건 팔기가 하늘의 별 따기야" 좌판을 벌인 상인 한 분이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을 들었다. 불경기라더니 재래시장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11시 30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남편이 맛집이라며 칼국수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런데 길게 늘어선 줄. 우리는 대기번호 7번이란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우린 소머리국밥집으로 계획을 변..
손으로 하는 작업에 일가견 있는 엄마다. 90 노인이 모티브 없이도, 옷은 물론이요 커튼과 방석, 테이블보 등을 만들어 내신다. 코바늘, 대바늘, 바늘의 여왕이다. 집안 곳곳에 엄마의 손길이 널려있으니 말이다.1970년대 후반에 엄마는 동양자수로 병풍을 만드셨었다. 검정 공단 바탕에 전통 문양의 소재를 막힘 없이, 그러나 섬세한 바늘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6폭 병풍을 만드셨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소파에 앉아 검정 공단 천에 엄마가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렇게 완성한 병풍은 어언 50여년의 나이를 먹었다. 그걸 동생이 버린다고 했다. 비를 맞히고, 구석쟁이에 틀어박혀 찢어지고, 눌려서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된다고, 버릴 수 없다고 해서 데려온 엄마의 ..
메리골드꽃 염색을 너무 기대했었나 보다. 그 결과가 생각보다 미미했고, 더러는 마음에 차지 않아 오늘은 보완 작업을 했다. 두 개의 광목천엔 아선약과 염색 물감을 덧 발라 열처리 후, 불순물을 제거해 햇볕에 말려 완성을 했다. 강했던 색상이 부드러워졌고,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포인트가 없어 그림을 그려줄까 고민 중이다.그런가 하면 세 장의 티셔츠에 하나는 철 매염제로, 두 개는 백반을 사용했는데 그 결과가 한 개만 마음에 드니...... 게다가 며느리 주려고 한 티셔츠는 폭망을 했으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냥 평범하게 할 걸, 실험을 해 본 내 탓이었다. 티셔츠 앞 뒤판 중간에 비닐을 깔고, 비닐과 천 사이에 메리골드꽃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만 실수로 그냥 천 위에 꽃을 얹었더니 발생한 ..
월요일. 꽃 따고, 비닐 깔고, 꽃 뿌리고, 심지어 그라인더로 쇠 파이프와 나무 막대기를 잘랐다. 메리골드꽃 염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힘든 과정으로 작업을 한 티셔츠와 천에 비닐로 꽁꽁 싸서 평창으로 보낸 염색 결과물이 오늘 도착했다. 당일 밤에 후배는 불을 때서 열처리를 했고, 다음날 햇볕에 말린 후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보냈다. 속전속결. 후배도 빨리빨리. 우리나라 택배도 빠르기로는 세계 제일이다. 센스 만점 후배는 농사지은 여주도 덤으로 보내왔다.꽃염색은 처음이다. 서투른 흔적들이 산재한 작품들. 왜 봉이 필요했는지, 그 봉을 왜 있는 힘껏 잡아당겼는지, 왜 켜켜이 비닐로 마감처리를 했는지 결과물을 보고 알아챘으니......백반에 처리한 티셔츠는 노란색으로, 철 매염제에 담갔던 긴팔 티셔츠와..
"선배님, 그림은 공부하듯이 하루에 세 시간씩 그려야 합니다" 어제 왔던 후배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받았고,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한 그림이다.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 그림이다. 열정보다는 열등감이, 자신감보다 자괴감이 앞서서 주춤주춤, 머뭇머뭇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5살 어린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힘을 얻기에 충분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최근에 그린 그림을 꺼내와 새로움을 입혔다. 공부하듯이 복습을 했다.그런데 하늘도 나처럼 그림을 그리더라. 그것도 테마도 있고, 매우 창의적이어서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더라. 다만, 잠시 한눈을 팔면 사라져버리니 귀하디 귀한 그림. 그래서 더 아름답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