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작업에 일가견 있는 엄마다. 90 노인이 모티브 없이도, 옷은 물론이요 커튼과 방석, 테이블보 등을 만들어 내신다. 코바늘, 대바늘, 바늘의 여왕이다. 집안 곳곳에 엄마의 손길이 널려있으니 말이다.1970년대 후반에 엄마는 동양자수로 병풍을 만드셨었다. 검정 공단 바탕에 전통 문양의 소재를 막힘 없이, 그러나 섬세한 바늘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6폭 병풍을 만드셨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소파에 앉아 검정 공단 천에 엄마가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렇게 완성한 병풍은 어언 50여년의 나이를 먹었다. 그걸 동생이 버린다고 했다. 비를 맞히고, 구석쟁이에 틀어박혀 찢어지고, 눌려서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된다고, 버릴 수 없다고 해서 데려온 엄마의 ..
메리골드꽃 염색을 너무 기대했었나 보다. 그 결과가 생각보다 미미했고, 더러는 마음에 차지 않아 오늘은 보완 작업을 했다. 두 개의 광목천엔 아선약과 염색 물감을 덧 발라 열처리 후, 불순물을 제거해 햇볕에 말려 완성을 했다. 강했던 색상이 부드러워졌고,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포인트가 없어 그림을 그려줄까 고민 중이다.그런가 하면 세 장의 티셔츠에 하나는 철 매염제로, 두 개는 백반을 사용했는데 그 결과가 한 개만 마음에 드니...... 게다가 며느리 주려고 한 티셔츠는 폭망을 했으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냥 평범하게 할 걸, 실험을 해 본 내 탓이었다. 티셔츠 앞 뒤판 중간에 비닐을 깔고, 비닐과 천 사이에 메리골드꽃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만 실수로 그냥 천 위에 꽃을 얹었더니 발생한 ..
월요일. 꽃 따고, 비닐 깔고, 꽃 뿌리고, 심지어 그라인더로 쇠 파이프와 나무 막대기를 잘랐다. 메리골드꽃 염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힘든 과정으로 작업을 한 티셔츠와 천에 비닐로 꽁꽁 싸서 평창으로 보낸 염색 결과물이 오늘 도착했다. 당일 밤에 후배는 불을 때서 열처리를 했고, 다음날 햇볕에 말린 후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보냈다. 속전속결. 후배도 빨리빨리. 우리나라 택배도 빠르기로는 세계 제일이다. 센스 만점 후배는 농사지은 여주도 덤으로 보내왔다.꽃염색은 처음이다. 서투른 흔적들이 산재한 작품들. 왜 봉이 필요했는지, 그 봉을 왜 있는 힘껏 잡아당겼는지, 왜 켜켜이 비닐로 마감처리를 했는지 결과물을 보고 알아챘으니......백반에 처리한 티셔츠는 노란색으로, 철 매염제에 담갔던 긴팔 티셔츠와..
"선배님, 그림은 공부하듯이 하루에 세 시간씩 그려야 합니다" 어제 왔던 후배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받았고,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한 그림이다.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 그림이다. 열정보다는 열등감이, 자신감보다 자괴감이 앞서서 주춤주춤, 머뭇머뭇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5살 어린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힘을 얻기에 충분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최근에 그린 그림을 꺼내와 새로움을 입혔다. 공부하듯이 복습을 했다.그런데 하늘도 나처럼 그림을 그리더라. 그것도 테마도 있고, 매우 창의적이어서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더라. 다만, 잠시 한눈을 팔면 사라져버리니 귀하디 귀한 그림. 그래서 더 아름답더라.
휴,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갈 수 있을까? 아침부터 손님들 점심을 준비했다. 나도 염색 체험에 참석해야 하니, 서둘렀다. 점심 메뉴는 샐러드 국수, 손님들 오면 국수만 삶으면 된다. 오전 10시. 서울에서 장선생이 내려왔고, 최선생과 동생이 합류했다. 꼼꼼하고 섬세한 장쌤이 온갖 재료와 찰떡을 챙겨 왔고 오늘의 사부, 평창 사는 후배는 매염제인 백반과 철, 그리고 농사지은 옥수수와 참외를 챙겨 왔다.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이, 미리 따놓은 메리골드꽃잎을 꽃받침과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 아무리 보아도 이 예쁜 색, 이 선명한 꽃은 염색을 했을 때 어떤 색일까 무척이나 궁금했고, 작업은 또 어떻게 진행될지, 떨리고 설레었다. 철과 백반을 희석한 매염제에 티셔츠 한 개씩을 7분간 담가 비벼주었다. 매염제에..
날마다 같은 일상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하다가도 여기 시골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 때문에 날마다 다름을 실감한다. 아침에 밭에 갔다가, 무성하게 자란 총각무를 솎았다. 어린 이파리 버무린 겉절이가 아주 맛있었으니, 오늘 저녁에 또 겉절이를 하기 위해서다. 저절로 자란 여린 아욱도 뜯었으니 이도 된장국을 끓여야겠다. 누렁잎과 벌레 먹은 이파리를 정리했어도 한 끼 정도는 될만한 양이다.새벽미사에 다녀왔더니, 오전이 여유롭다. 오랜만에 꽃밭을 둘러보았다. 늦여름에 만개한 벌개미취가 여전히 풍성한 보랏빛을 더해주고, 꿩의비름과 막 피어난 아스타 덕분에 가을 정원이 풍성하다.우 보라, 좌 노랑의 꽃밭이 오래 보아도 예쁘니 나태주의 시 풀꽃을 실감한다.계절을 고려해서 다양하게 꽃을 심었으니 당연한 결..
시골에서 아침 6시면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닌데, 일찍 일어나려니 꾀가 났다. 오늘은 청주 선산에 성묘 가는 날. 술과 과일, 포를 준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안개도 자욱, 구름도 가득한 하늘 아래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을 지나 선산에 도착했다. 오늘이 성묘하기 좋은 날인지 곳곳에 성묘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일찍 도착한 친척들은 예초기로 잔디를 깎고 있었다. 남편과 나도 갈퀴를 들고 깎인 잔디와 덤불을 치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늘어난 가족들이 모여 선산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독였다. 여기저기서 윙윙 거리던 예초기 소리도 멈추고, 깨끗이 정돈된 비석 아래서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예를 드렸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들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밤을 주웠다. 봄엔 보지 못했던 ..
이웃의 비닐하우스엔 약 열 그루의 바질이 심겨있다. 평소 바질을 즐기는 이웃 덕분에 독특한 맛의 귀한 바질을 왕창 얻어오게 되었다.그런데 문제는 난 바질 사용법을 잘 모른다는 것. 바질이 뿌려진 피자를 경험한 것이 다. 그래서 바질 사용법을 찾아보았다. 피자, 샐러드, 파스타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었으나 내가 선택한 것은 바질 페스토다. 아침 식사로 빵을 주로 먹으니 샌드위치에 바질 페스토를 발라 먹을 생각으로 페스토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봉착한 문제. 치즈가 없다. 그러니 씻어놓은 바질은 일부는 냉장고에, 일부는 냉동실에 보관하고 치즈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파마산 치즈는 그럭저럭 잘 구매했는데, 모차렐라 치즈가 말썽이었다. 네이버에서 클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가 구매'를 클릭하게 만들..
구름 덮은 날은 강원도가 이불속처럼 조용하다. 어제보다 더 낮은 기온. 서늘한 날씨다. "배추밭에 물 줄까?" 했더니, 남편은 "오늘은 흐린 날씨니, 낮에 주자" 한다. 빨래를 하려다 이도 내일로 미루고 밭으로 내려갔다. 토마토도 끝물, 호박도 끝물인가 보다. 말라 시들은 밑동인데 반해 그래도 하늘을 타고 올라간 호박이 꽃을 매달았으니, 호박이 매달아 주기를 기대해 본다.밭으로 가는 길목에 귀한 나무 칠자화 꽃이 만발했으니, 이도 사진에 담고서야 밭에 도착했다.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배추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오늘 시선이 멈춘 곳은 땅콩이다. "추석에 손주들 오면 땅콩 캐기 체험시키자"라고 동생과 이야기를 했던 터. 추석은 아직 2주나 남았지만, 호미를 들고 조심조심 땅을 파보았다. 후루룩 가지를 뽑아..
긴팔을 꺼내 입는 일이 그새 익숙하다. 뭐든 처음은 머뭇거리고 어색하나 두어 번이면 족하다. 일도 그렇고, 계절도 그렇다. 어느새 저녁엔 창문을 닫고 있으니, 가을이 스며든 탓이다.배추와 쪽파, 당근이 쑥쑥 자라는 것처럼 가을 하늘도 자꾸만 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하늘은 키가 커진다 하지 않고 높아진다고 하는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어제도 오늘도 아름답기만 하다. 하늘이 그림을 그리는 건지, 구름이 그러는 건지 가을 하늘은 날마다 변화무쌍한 그림이다.확실히 짧아진 낮.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아진 것처럼 밭에 나가는 시간도 점점 줄고 있다. 이틀에 한 번 정도 밭에 물을 주면 된다. 그만큼 풀 뽑는 일도 줄어들었다. 열심히 짜던 니트도 완성했고, 여유 있는 시간에 붓을 잡았다. 2년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대신 다리를 건너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하필 점심시간. 우린 맥도널드 햄버거를 점심 메뉴로 선택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 햄버거를 먹다니 2년 만의 일이다. 사람 냄새와 기름진 냄새의 분위기도 오랜만이니, 이도 묘한 즐거움이 있었다.자동차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과 버스를 탔고, 걷고 뛰어서 서울에서의 목적을 달성했다. 볼 일을 보고 느긋하게 아들 집에 도착을 하니 늦은 오후. 손주 하원시간이란다. 며느리와 함께 어린이집엘 갔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손주가 할머니를 보고, 손을 내주었다. 손주는 미열이 있고, 기침을 했다. "다민아, 아파?" 물으니, "응. 아파"라고 감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집에 와서는 내 옆에 꼭 붙어서 얼마나 잘 노는지...
"자기야, 나 좀 도와줘""알았어. 내려갈게"남편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호미와 씨앗을 들고 밭으로 갔다. 남편이 올 때까지 우선 풀부터 뽑고 무씨를 뿌릴 자리를 준비했다. 무는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무를 만들어 김치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도 풀부터 눈에 보인다. 비만 오면 온갖 풀씨가 무더기로 뿌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번 비에도 예외 없이 좁쌀만 한 싹들이 밭 한가득 나왔다. 아무래도 비가 풀씨를 뿌리는 것만 같다. 이럴 땐 호미보다 넓은 면적을 긁어내는 도구가 더 유용하다. 풀도 뽑고, 고랑의 풀도 긁어내주고, 무씨 뿌릴 곳에 돌멩이도 골라주는 작업을 마쳤는데도 기다리는 남편이 오지 않았다. "자기야!" 동네가 떠나가도록 외치며 남편을 찾았더니,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손보고 있었다. 얼..
"비 와?""오네"일기예보가 틀린 건지, 새벽에 그친다는 비가 아침에도 내리고 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어젠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오전에 은색을 품은 베이지색 조끼를 완성했을 뿐. 하루 종일 소파 붙박이로 있자니, 손발이 심심하고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이런 날은 우리 부부가 싫어하는 날. 힘든 날이다.내리던 비가 주춤한 틈을 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키가 큰 꽃들이 저리도 겸손해지다니, 모두 허리가 휘어져 땅에 코를 박고 있으니,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묶어 넘어진 꽃들을 일으켜 세워줬다.비 때문에 결석을 한 밭에 내려갔다. 날마다 오던 밭에 하룻만이다. 그런데 밭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배추도 시금치도 부쩍 자랐고, 처음 보는 쪽파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