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그, 춥다" 눈 뜨자마자 창고에 다녀온 남편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한 말이다. 어제보다 낮은 기온. 산골짝에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밭에 내려갔다. 배추는 제법 자라 결구를 보여주는데, 무가 문제다. 다음 주에 김장을 하려는데, 일주일 동안 저 무가 잘 자라 줄지...... "언니, 세 시에 산책 가요" 옥이에게 러브콜이 왔다. 주말에 내려온 옥이 덕분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린 강변을 산책했다. 강물에 젖은 깊숙한 가을을 호흡했다. 곱고, 아름다웠다. 지금, 여기가 참으로 행복했다.오늘은 강을 건너, 다른 마을 입구까지 가 보았다. 사슴농장이 있었는데, 우리가 사슴을 구경하는 건지, 사슴이 우릴 감상하는 건지, 우린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관찰했다.엊그제까지도 파랗던 배추밭이 언제 빈 들판이..
창고에서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날 다급하게 불렀다. "빨리 와" 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갔더니, 이게 웬일. 참나무에 표고버섯이 주렁주렁 매달린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일이......""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대박"바가지를 가져와 따서 담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많다. "아니, 표고 따는 게 자기 로망이라며 저리 자라도록 몰랐단 말이야?" 남편이 핀잔을 줘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웬 횡재람 하며 펼쳐놓으니, 이제야 아쉽다. 좀 더 일찍 발견했어야 했다. 너무 웃자라서 꽃을 피웠으니...... 맛있는 표고볶음은 포기하고 건조해서 채수거리로 사용해야겠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선물같은 표고버섯이다.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던 표고였잖아. 여름내 그리 자주 ..
"웬 한파주의?" 일기예보가 틀리길 바랬다. 그러나 한밤중 온도는 영하3도. 추위가 너무 싫은 내가 볼멘소리를 했다. 일교차 심한 날씨야 강원도에서 자주 있는 일이지만, 10월 중순에 영하라니...... 노랑과 빨강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이 바람과 비에 하나씩 둘씩 떨어지는 안타까움을 바라보기가 힘이 든다. 그런데 또 영하라니, 밤새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에 대비하려고 어젠 김장할 무밭에 비닐을 덮어줬었다. 갑작스런 한파에 지레 겁을 먹고, 밤엔 화목난로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거실에서 푹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밭에 내려간 일. 하얗게 서리 맞은 배추와 양상추가 눈에 들어왔다. 오, 밤새 오들오들 떨었을 작물들이 걱정되었다. 아, 얼어 죽으면 안 되는데......그러나 아..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내렸다. 그런데 잿빛 하늘 아래 움츠리고 있던 나뭇잎이 바람에 뚜두둑 떨어졌으니, 햇살이 나뭇잎을 감싸 안았어도 나뭇가지는 오슬오슬 떨었다.그나마 오후엔 파란 하늘이 햇살 아래 눈이 부셨으니, 아침에 숨었던 달리아가 빛을 발했다.비가 그친 하늘은 눈물을 닦은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이다. 늘 구름과 함께......얼마나 다행인가. 바람이 불어 단풍을 휩쓸고 지나갔으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파리를 할퀴고 날아갔으나, 가을의 속살은 이렇게 고우니. 여전히 누님 같은 꽃 국화가 굳건히 서 있고, 담장 아래 칠자화 붉은 꽃받침. 당당하게 버티어 있다.다만, 낙엽 쌓인 저 길모퉁이에 새 계절의 발끝이 보이고 있으니, 모퉁이 돌아서 걸어올 그 계절을 기다려야 할지 마음이 일렁일 뿐.
꼭 할 일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빈둥빈둥 늘어진 시간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난 그게 잘 안된다. 봄처럼 꽃과 작물을 심을 일도 없고, 여름처럼 물을 주거나 풀 뽑을 일도 없는 가을이다. 김장은 더 있어야 하고, 전지도 더 기다려야 하는 시기. 마치 농한기 같은 요즈음, 그런데 일거리를 발견했으니......언제부턴가 귀한 꽃나무 홍화산사가 힘을 잃고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서 있다. 봄에도 화사한 꽃을 보였는데 말이다. 다행히 그 이유를 찾았다. 바로 뽕나무 때문이었으니......기세가 등등하기로 소문난 나무가 바로 뽕나무다. 순식간에 황금색 뿌리를 퍼뜨리고 땅을 장악하니, 오죽하면 집안에 심지 말아야 할 나무라고 소문이 났을까? 불과 몇 년 전, 바위틈에서 존재감 없던 뽕나무가 법면을 장악하고..
어젠 고약한 바람이 불었다. 수돗가의 그릇이 넘어지고, 뒤집어지고, 무거운 받침으로 잘 버티고 서있던 파라솔도 땅바닥에 뒹굴었으니...... 곱게 색칠하던 단풍도 세찬 바람에 나가떨어졌다. 야위어가는 나뭇가지를 바라보기가 슬프고 안타까웠다.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아침. 햇살이 찾아왔다. 커피를 내리며 바라다본 창문에 여전히 따뜻한 가을 단풍. 액자가 창틀인 듯, 창틀이 액자인 듯, 한 폭의 그림이 나타났다.자석에 이끌린 듯 핸드폰 하나 들고 밖에 나갔더니, 밤새 추위에 떨었던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다시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고 고양이밥을 챙겨 나왔다.비와 바람이 다녀간 가을. 나뭇잎 떨어진 앙상한 가을이 하룻만에 더 깊어만 졌다.바람이 할퀴고 간 하늘. 파란 생채기를 새털구름이..
"우와, 단풍 참 곱다""서울엔 아직 단풍이 없었는데, 역시 단풍은 강원도구나"동생과 사과 과수원에 가면서 우린 단풍이 고운 들녘과 산을 감상했다. 파란 하늘에 노랗고, 빨간 단풍이 햇살 아래 빛이 났다.사과 과수원은 동생 친구의 친구집이다. 어쩌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사과밭을 샀을까? 언제 와도 늘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주인장. 오늘도 웃음 가득 머금고 우리를 맞았다. 파란 하늘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사과가 탐스러웠고 보석처럼 아름다웠다.지난번 왔을 땐 홍로라는 품종을 샀는데, 오늘은 귀하디 귀하다는 감홍을 샀다. 홍로는 아삭한 식감과 즙이 많은데 비해, 감홍은 아삭함 대신 당도가 높았다. 사장님은 동생 친구의 친구인 데다 과수원에 직접 방문했다고 덤 앤 덤, 4kg에 45,000원이라더니 ..
어젠 서울에 다녀왔다. 여름 같은 날씨였지만, 초록이 벌써 가을옷을 꺼내 입고 있었고, 샛노란 들판이 펼쳐져있었다. 저녁 어스름 돌아온 강원도엔 아침보다 더 깊어진 가을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밤새 내린 가을비. 단비가 내린 앞산에 저 운무는 무얼 또 선물하려는 작전을 짜고 있는 걸까? 얼마나 멋진 풍경을 내보이려고 저리도 분주한 지......동생네 마실 가는 길엔 낙엽이 한가득 쌓여 있는데,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낙엽이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오후가 되면서, 비는 그쳤다. 가을비 대신 쏟아지는 햇살. 날마다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이 운무 걷힌 하늘에 이쁘기만 한 민낯을 드러냈다. 비늘 같은 햇살이 낙엽처럼 쏟아져내렸다.
새벽 미사를 드렸다. 7시. 새벽이라기엔 아침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성당 가는 인적 드문 도로엔 자동차 대신, 자욱한 안개가 점령을 했다. 해가 떠오른 하늘엔 조각구름 떼가 보석처럼 박혀있었고......미사를 드리는 교우들 중엔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부님도 마스크를 착용하셨다. 일교차 큰 날씨엔 감기 조심이다. 그런데 그 일교차 때문에 아침마다 아지랑이를 만난다. 봄의 대명사인 아지랑이를 가을에 보는 것도 처음이다. 다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니, 부지런해야지만 볼 수 있다. 아지랑이 옆 연통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춥다며, 성당에서 귀가한 남편이 난로를 피웠으니....... 그런데 그때, "오늘 오후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니...... 난로 앞에서 듣는 늦더위 ..
나도, 이웃도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한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었다. 어젠 아주 오랜만에 삼총사가 만나 강변을 산책했다. "총각무 김장 했어요? 우린 엊그제 끝냈어요." 아, 벌써 김장할 때가 되었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단어. 김장. 총각무는 때를 놓치면 무 중앙에 힘줄이 생겨 맛이 없어진다고. 아이고, 그렇구나 하며 오늘은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했다. 밭에 내려가 총각무부터 뽑았다. 어느새 제법 자랐다. 미리 뽑아 한 번 김치를 담았으니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았다. 내려간 김에 가지와 파프리카 나무를 뽑아냈다. 여름의 끝자락까지 정리를 한 셈이다.무를 다듬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다. 뭐든 끝은 있는 법. 여유로운 시간을 천천히 즐길 때쯤 다듬기는 마무리되었고, 농약을 치지 않았으니 흙을 털어낼..
"어? 아랫집 2층에 불이 켜져 있네?"남편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말했다. 동생네 2층에 불이 켜질 수도 있지. 시큰둥 넘겼는데, 아침에 밭에 내려갔다 낯이 익은 흰색 자동차를 보고서 조카네가 온 걸 알았다. 중국 손님을 치른 지 하루 만에 또 손님이라? 물론 아들 내외와 손녀들이니 손님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동생의 피로가 풀리기 전이니 말이다.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손녀들이 와락 내게 와 안겼다. 11살, 7살 손녀들은 나더러 꼬꼬할미란 애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모님, 혹시 뜨개실 필요하세요?" 월말에 이사를 앞둔 조카며느리가 짐정리를 하려고 내게 내민 실은 수세미실과 뜨다 만 노란색 아크릴실이었다. "애들 가방을 뜨다가 바빠서 그만 여전히 미완성이에요." 하는 며느리의 노란색 실과 뜨다만 가방을 ..
10월 초인데도 우린 난로를 때고 있다. 으슬으슬 추운 밤의 기온은 낮과는 천양지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난 밤이면 난로 옆에 껌딱지로 붙어 있다. 그런데 이 날씨가 낮엔 기가 막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하늘은 높고 파랗고 햇볕은 따사로우니, 오늘도 난 꽃밭에서 노닐었고, 꽃씨를 받았다.가을의 전령사인 국화가 어느새 만발했는데, 여름꽃 섬색시와 한련화가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추석에 손주가 뜯었을 땐 녹색이었던 풍선초 씨앗이 제대로 까맣게 여물었다. 풍선초는 풍선같이 생긴 모양도 예쁜데 씨앗마저 앙증맞다. 탱탱한 풍선을 톡 터뜨리는 게 재미가 있어 씨앗 열 개를 인터넷으로 구매했었다. 택배비가 더 비싼 풍선초가 다글다글 풍선을 매달았으니 대박이로다. 택배비가 아깝지 않은 풍년이다.멜라포티움과..
동생이 바쁜데, 나는 또 왜 바쁜 건가? 옆집 사는 동생네에 연일 손님이 왔다. 엊그젠 중국에서 가족 네 명이 방문해 2박 3일을 했고, 그 가족이 떠나자마자 연변 출신 손님 1명이 또 내려왔다. 이들은 모두 제부의 중국 지인들이라고 했다. 연변 출신 손님은 내 집에서 1박을 했다. 덕분에 나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중국어를 못하니, 그들과 소통은 힘들었지만 11살, 7살 형제와는 호박과 가지 따는 체험을 함께 했었다. 동생 부부는 손님과 함께 설악산엘 갔다. 중국 아이들 목소리도 함께 떠난 산골짜기엔 정적이 또 일상이 되었다. 이제야 나도 밭에 내려가고, 못다 깐 땅콩 껍질을 벗겨냈다. 그러다가 시작한 일. 여름옷을 정리했는데, 이게 도미노가 되어 급기야 살림을 정리하게 되었으니......강원도에 이사 ..
설악산에 첫 단풍이 들었다더니, 어제와 확연히 다른 오늘. 낮아진 기온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 내 열였던 창문도 열지 않았고, 집 안에서도 겉옷 하나를 더 껴입었다. 아침 일찍 밭에 내려가는데 손끝이 살짝 시렸다. 하늘도 완연한 가을이다.가을꽃 풍년이다. 보랏빛 아스타와 구절초, 국화가 날마다 풍경을 더한다. 추명국은 언제나 우아한 귀부인 같다.언제 초록을 벗었을까? 마음 급한 나무들은 어느새 알록달록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추석이 엊그제였는데, 벌써 10월이다. 강원도는 10월에 김장을 한다. 땅콩과 고구마, 고추를 딴 밭엔 이제 김장거리만 남았다.백당나무와 대추, 꽃사과와 수세미가 가지마다 가을을 매달았다.한 장 남은 달력이 안타깝다고 하얗던 목수국이 땅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억새도 아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