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에서 최초로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에 대한 형상화를 시도했을 메리 셸리(Mary Shelly)의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괴물은 끊임없이 인간을 동경한다. 그의 창조주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탄생과 동시에 그를 버렸고, 세상의 모든 인간들도 그의 친절하고 고상한 지성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그의 외모만을 이유로 공격을 해 왔는데도 말이다. 인간을 닮았으나 영원히 인간일 수 없고, 인간을 무엇보다 사랑하지만 결코 그들로부터 사랑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존재. 1800년대 메리 셸리가 창조한 이 괴물의 존재론적 특성은 인간의 상상적 원형에 깊이 박혀 있는 모든 인공 존재들의 특성이며 '인간을 사랑한 AI'는 AI 서사에서 꽤나 오래된 주제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발명 이전부터 인간의 신화적 ..

바다에 왔으니, 저녁 메뉴로 우린 회를 선택했다. 회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회의를 했다. "숙소 근처에서 배달시킬까요?" 아들은 쉬운 길을 제안했고 "관광지가 변질됐어. 대게를 섞어 판대." 남편은 불만을 표출했다. "멀지만 임원항에 가서 싱싱한 회 떠오자." 결국 나의 제안에 40여분을 운전해서 임원항에 갔다. 임원항은 삼척 외곽의 작은 항구다. 지인이 소개한 횟집에서 광어와 쥐치, 놀래미와 해삼 등 3~4인분의 해산물을 구매하는데 10여만 원이면 충분했다. 식당처럼 다양한 '곁들이찬'은 없어도 싱싱하고 쫄깃한 회를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새벽 6시에 알람이 울렸다. 세수도 하지 않고 남편과 찾아간 곳은 '삼척 번개시장'. 경매하고 남은 싱싱한 수산물을 아침 시간에 반짝 판매한다 해서 번개시장이라고 한..

삼척에 가기 위해 동생과 약속한 시간 11시. 아침을 일찍 먹은 탓에 11시까지 무얼 하고 기다리지 싶다. 평소라면 이 날씨에 보리수도 따고 정원을 맴돌다 잔디밭의 풀을 뽑고 있을 텐데, 오늘은 엊저녁에 준비한 짐을 다시 챙기고, 화장을 했는데도 시간이 남아돈다.삼척 쏠비치는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에는 지인 부부와, 몇 년 전에는 직장의 워크숍으로 방문했었다. 게다가 삼척은 월 초에도 다녀온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오늘은 가족, 특히 동생네와 함께하는 여행이라서 설렘이 남다른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비가 내렸다. 주말도 아닌데 차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초입부터 트래픽 쨈이라니......그런데, 걱정은 잠시. 공사 구간이 끝나자 도로도 정상, 비도 그쳤다. 배꼽시계가 작동을 하니, 우린 숙소 가기 ..
"하비, 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의 하비는 인간의 감정 표현을 알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로봇이다. 그와 대화를 했던 인간들은 곧 자신들이 하비의 거짓말에 당했음을 알게 된다. 하비가 인간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하비는 반드시 인간이 원하는 대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거짓말 깨문에 더 큰 상처와 피해를 입게 된다. 결국 로봇 3원칙이란 로봇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운, 그저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지능을 가진 로봇의 창발성은 그가 문제를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연구를 위해 로봇 1원칙을 아주 살짝 변경한 군 당국은 이후 로봇 한..

나도 해도 일찍 일어났지만, 오늘은 동생도 식전 댓바람부터 문자를 보냈다. "지붕 공사 때문에 부모님 챙기는 건 언니가......"9시에 부모님은 센터에 가시고, 난 어제처럼 밭에서 풀을 뽑았다. 하루에 한 두 고랑씩 풀을 뽑았더니 이제 서너 고랑만이 남았다. 고지가 바로 턱 앞에 왔다. 동생이 내려온 지 어느새 열흘이 지났다. 한 사나흘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오전 시간엔 각자의 집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점심부터는 자매가 늘 붙어 다닌다. 밥도 해주고, 외식을 하고 왕수다까지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오늘은 동생이 바지락 칼국수를 사줬다.꿈을 꾸면 되는 것들. 그걸 정말 할 수 있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하는 일은 집 안에 초록을 들이는 일이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면 창문 가득..
아시모프는 로봇을 상상의 존재가 아닌 현실의 존재로서 재현해낸 최초의 작가다. 그는 「아이, 로봇」에서 로봇들에게도 '마음'이 있고 '의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의식' 있음의 상태란 무엇일까? 과학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은 우리가 특정 대상의 의식 있음 상태를 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저 인간 중심적으로,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의식' 있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박쥐의 의식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박쥐의 삶을, 그 생활의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듣는) 초음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Dennet, 1991/2013). 아시모프는 '지능'과 '의식'이 있는 존재로서 ..
'로봇'이라는 대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 속에 등장해 왔다.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 인공 생명'에 대한 이야기의 기원은 신화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애절한 사랑의 결실로 살아 움직이게 된 피그말리온의 인형과 크레타섬을 지키는 오토마톤(automation)인 탈로스. 이들은 그리스 신화시대의 인공 생명들이다. 인간이 세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신비로운 비인간 존재들과 그들의 기원에 대해 상상해 온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신기한 것은 신화의 시대에도 분명히 신의 명령이나 마법에 의해 갑자기 생명을 얻은 존재가 아니라, 인공적인 재료와 설계를 가지고 만들어진 존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Mayar, 2018/2020: 9). 하지만 신화시대의 인공 생명과 현재 우리가 마..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다는 비, 장마다. 후덥지근~, 습도도 높고 덩달아 컨디션은 구름만큼 무겁다. 그래도 풀은 뽑아야지. 물 먹은 땅을 호미로 닥닥 긁어 풀을 뽑았다. 비 좀 왔다고 케모마일도 고추도, 토마토도 죄 누웠기에 지지대와 지지대 사이에 끈으로 이들을 묶어 주었다. 그래서 장마 대비는 이제 끝!지지대를 만들어줬으니 여유만만. 저녁에 감자전을 하려고 감자를 캤다. 하지에 캔다 하여 하지감자인데, 하지 전인데도 제법 알이 굵다.여유만만, 유유자적, 이제 꽃들을 둘러 볼 차례. 꽃들에게 물어본다. "너희들은 장마에 끄덕 없겠지?" 노랑 달맞이 대신 벌이 대답한다. "오, 예스."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웨딩찔레도 쓰러질 듯 풍성하다.올봄에 애기를 사다 심었는데도 꽃을 피운 삼색 병꽃이웃이 나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