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 떠오른 해님 덕에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데크에 나가 하늘과 산과 나무를 즐겼다. 그런데, 초록의 나무와 파란 하늘에게 마음을 빼앗겨 멍 때리다가 그만 시간을 놓쳐버렸다. 앗, 오늘 반모임! 그제야 정신을 차려 세수하고, 간신히 아침 미사에 참석했다.9시 30분 미사를 마치고 우린 마르코방에 모였다. 농번기라서 평소보다 적은 인원 6명이 모여 시작 기도를 하고 작년 '성모의 밤'에 헌송한 '어머니여 꿇어앉아' 성가를 합창했다. 낯이 익은 성가 선율에 작년의 추억이 떠올랐다. 처음 악보를 받고 어르신들과 회관에 모여 엄청 열심히 연습했었는데......'요한복음'을 읽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서로 나누는데, 평소 말씀이 없던 루시아 어르신이 "글쎄, 난 '지식'을 뽑았지 뭐야. 그 ..

쟁반에 아침을 차려 데크로 나간다. 사방에 초록 병풍이 둘러쳐 있다. 귀를 열지 않아도 새소리 들리고, 은은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초록의 향연, 바람의 향연,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어느 한적한 휴양지의 리조트 풍경이다.초록이 좋아 나무를 심었고, 꽃이 좋아 가꿨는데 그들이 내게 더 많은 걸 준다. 오래 피는 꽃, 배경으로 더 아름다운 꽃, 가녀리지만 꾿꾿한 순백의 마가렡을 나는 좋아한다.여린데, 강하다고 남편이 좋아하는 섬색시꽃(웨딩 찔레).30cm 정도의 황금조팝이 어느 날 잔디를 꽉 채웠다. 솜털 보송한 핑크빛이 6월을 꽉 채웠다.풀인 줄 알고 죄 뽑다가 아차 싶어 겨우 살린 안개꽃. 그래서 더 돋보이는 포인트 꽃이 되었다.시골 흔한 꽃이라서 동생이 나눠줄 때, 싫다고 했다. 그런데 볼수록..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외식이라고?" 사전적인 의미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집 안이 아닌, 밖에서 먹는 걸 난 감히 외식이라고 하고 싶다. 5월이 되면 아침부터 난 외식을 한다. 데크에 앉아 초록을 바라보며 꽃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야외 정원에서 아침부터 외식을 하는데, 감히 즐기는 수준이다.어제저녁도 외식을 했다. "며칠 전 윗집에서 닭백숙을 했으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자"라고 이웃의 초대를 받았다. 그러니 이웃집에서 제대로 외식을 했다.6시. 우린 서향의 볕이 쏟아지는 정자에 모였다. 윗집은 비빔국수를 해왔고 난 루꼴라와 쌈겨자를 준비해 갔다. 지글지글 삼겹살이 구워지고 농사 지어 만든 마늘장아찌와 밭에서 바로 뜯어온 로메인 상추, 브로콜리, 양파 등 초록의 식탁엔 김치 ..

"이건 남자가 해야 해." 라며 남편에게 약 치는 일을 부탁했었다. 시골살이에서 꼭 해야 할 일이라서 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그런데, 약 치는 일은 결국 기다리다 지쳐 오늘, 내가 하고 말았다. 장미와 웨딩찔레가 피기 시작했고, 6월 말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마스크와 고무장갑, 모자와 작업복으로 무장을 하고, 물 20ml들이 약통에 농약 2ml를 희석시켜, 약을 뿌렸다. 나무의 얕은 곳은 그럭저럭 힘들지 않았으나 키 보다 높은 곳에 분사하기가 힘이 들었다. 아, 이래서 이 일은 남자들이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주로 꽃나무와 측백, 주목에 분사했는데 무려 세 통의 양을 소비했으니, 농약 냄새 때문일까 어지럼 뱅뱅, 기진맥진이다. 게다가 어제저녁에 했어야 할 '가뭄에 물..

여긴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다. 2015년, 정몽주 회장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 평창군이 함께하는 축제를 시작하여 올해 11회가 되었다고 한다. 110억이란 거대한 예산을 들여 2024부터 내년까지 '산촌 클래식 예술 마을'로 조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인구 1700명의 시골 작은 마을이 클래식 음악으로 들썩이고 있다고......"자연이 예술이 되고 마을이 무대가 된다"는 캐치플레이즈처럼 무대는 울창한 나무숲이요, 하늘과 산에 퍼지는 선율로 마을은 마치 예술이 된 듯. 참으로 진귀한 경험을 했다. 작은 마을 한쪽에선 통기타와 아코디언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양한 체험부스와 퀴즈 코너도 있었다. 퀴즈는 생각보다 고난도의 클래식 문제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상품 하나를 겨..

"8시입니다." 반모임 단톡방에 공지된 성당 제초 작업 시간이다. 성당에 8시까지 가려면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남편에게 깨워달라 부탁할까 하다가 핸드폰 알람을 예약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잔 때문일까?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일어날까 하다가 한 시간 더 누워있었다.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고 7시 40분, 헤레나 자매님의 차를 타고 어르신들을 모시러 마을 회관에 갔다. 80대 후반인 두 어르신들을 모시고 성당에 가는데, 루시아 어르신도 "늦을까 봐 새벽 5시에 일어났다"라고 하셨다.성당에 도착하니 유따 자매님이 법면의 꼭대기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꽤 높은 위치인데도 서걱서걱, 씩씩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화단의 흙은 푸석푸석하고 무성한 잡초는 더러는 말라 있..

일찍 찾아오는 해님 덕분에 덩달아 나도 일찍 일어났다. 어제처럼 데크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오늘은 개미취에 눈이 갔다. "어? 작년엔 분명 두어 개였는데, 언제 저렇게 많아졌지?" 북쪽화단에만 있던 벌개미취다. 그런데 저절로 난 두어 개의 아이들이 군락을 이뤘는데, 문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해치운다는 것. 번식력 갑인 취가 수선화밭을 잠식해버렸다. 그러니 장마 오기 전에 어서 조치해야한다. 찻잔을 남겨두고 벌떡 일어나 호미를 들었다. 햇볕 뜨거워지기 전, 아침 8시부터 서둘렀다. 남쪽 1호 꽃밭에서 벌개미취를 뽑아냈더니 제법 양이 많다. 뽑아낸 곳에 있던 기존의 수선화가 웃자란 이파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이고, 미안쿠나 수선화야." 이제라도 옮겨주니 다행이다 하며 아랫밭으로 내려갔다.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