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슈우욱, 쿠르릉 콱, 툭, 삐요삐요삐요.
포클레인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내는지 오늘 또 알았다. 며칠째, 앞 집은 공사 중. 포클레인이 법면에 축대 쌓기를 한다. 커다란 돌멩이를 한꺼번에 이동할 땐 쿠르르릉 천둥소리를 내고, 흙을 파서 옮길 때는 슈우욱~ 소리를 낸다. 사람 손모양을 한 큰 삽은, 땅을 파고 돌을 쌓는 일 뿐만 아니라 나무도 뽑아낸다. 마치 풀을 뽑듯이 큰 소나무 한그루를 단숨에 쑥 뽑아낸다.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 같다. 쿠르릉 발동을 걸어 쿵, 콱! 전방의 먹잇감을 놓치는 일이 없다. 돌덩이 하나를 발톱에 꽉 차게 들어 올려 턱 하고 계단을 쌓으면서, 툭하고 그 특유의 손으로 콱 눌러주면 신기하게도 돌계단이 한 줄 생긴다. 벌어진 돌틈에 흙과 잔돌을 부어주면 든든한 축대가 만들어지니, 볼수록 재미나고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후진도 가능한 이 기계는 불자동차처럼 삐요삐요 소리를 낸다. 특히 사람 손 같은 기구가 볼 수록 영물이다.

그러나, 눈은 즐거운데 귀가 영 불편하다.
"아고, 시끄러워."
꼭두새벽부터 일하는 포클레인 때문에 아침잠을 설치기 며칠째. 오늘도 포클레인은 아침 댓바람 7시 30분에 출동을 했다. 성당 주보를 편집해서 본당으로 보내놓고 나니 시끄러운 소리를 참을 수가 없다. 마우스 대신 삽을 들었다. 포클레인 몸체만큼이나 둔탁한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남편과 같이 하려던 편백나무 이식이 오늘의 목표다. 주차장의 편백을 물가로 옮기려면 구덩이부터 파야한다. 한 삽 두 삽 나는 콕콕 삽질을 하고, 크르릉 크르릉 포클레인은 상자만 한 돌덩이를 나른다.
"뭘 하게요?"
건너편에서 일하던 포클레인 기사님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 편백나무 이식하려고 구덩이 팝니다."
"비켜요." 하고 사람 손같이 생긴 도구로 한 번 푹 퍼내니 커다란 구덩이 하나가 생긴다. 우와! 이렇게 쉬울 수가...... 나의 반나절 일거리를 1분 만에 해결하다니......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했다. 나, 오늘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하기를 잘 한 거지? 우왕, 신나라......
앞 집 덕분에 난 정원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다. 기사님 말씀대로라면 법면 위에 펜스를 치고, 경계면에 상록수와 꽃나무를 심을 예정이란다. 우리 집 거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계면에 어떤 꽃이 필건지 사뭇 기대되는 내용이다.
분명 앞집 정원이지만 감상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골의 풍경이다. 저 넓은 땅이 정원이 된다니, 그 정원을 거실에서 볼 수 있다니..... 정원이 생긴다는 기사님 말에 확 관심이 쏠리고, 그 관심은 기대와 설렘으로 바뀐다. 사람, 참 간사하다. 구덩이를 파주신 기사님의 호의 때문일까? 커다란 정원이 생긴다는 소식 때문일까? 크르릉 쿵쾅 천둥소리가 시끄럽지 않게 되다니......
기사님의 호의와 꽃나무, 푸른 상록수의 풍경을 기대하는 것만으로 시끄러운 포클레인은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젠, 편백나무를 캘 차례다. 2년 전에 1m 남짓한 애기를 사다 심었으나,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은 나무를 나 혼자 가능할까? 일단, 삽질부터 시작해 본다. 어림도 없는 몸짓, 삽질이 무색하게 편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쿡쿡 발로 밟아 원을 그리듯 한 동안 삽질을 했더니 앗, 드디어 나무가 움직인다. 기대감 상승, 결국은 나의 승리! 내 키보다 큰 편백 한 그루를 무사히 안착시키는데 성공을 했다.
오늘 하루도 초과 달성. 다 앞 집 포클레인 덕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하길 잘한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