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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아버지와 풀

요술공주 셀리 2024. 6. 28. 10:12

3주 만이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가 밭에 나오셨다.
응급실에 다녀오신 후론 센터에만 가시고 집에서 꼼짝도 않으셨었다. 평소엔 거의 매일 밭에 나오셨는데, 정말로 많이 아프셨나 보다.
호미로 풀을 뽑는 아버지의 팔에 힘이 실리셨다. 한편 반갑고 한편 걱정스럽다. 코로나 이후, 체중도 줄고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는데 저리 풀을 뽑으셔도 괜찮은지......

아버지의 발이 끊어진 밭고랑엔 풀이 빼곡하다. 밭고랑까지 초록이 무성하다. 몇 번의 비에 감자 이파리만큼 자란 풀. 아버지 대신, 밭에 나갈 때마다 풀을 뽑아줬지만 어림도 없다. 쇠비름이 꽃처럼 퍼졌고 바랭이가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무섭게 자랐다. 이놈은 뽑기도 힘들어 호미로 캐내야 하는데, 성질 급해 맨 손으로 뽑다가 손가락만 휘었다.



내일, 비 예보가 있다. 그래서 햇볕이 제법이지만 감자를 캤다. 줄기가 굵은 것만 한 양동이 캐고 가는 건 남겨두었다. 하루볕을 먹고 더 굵어지란 바람으로......
캔 감자를 욺기려는데, 낯익은 호미와 괭이가 보인다. 아버진 괭이랑 호미를 밭에 두고 가셨다. 똥손인 아버지. 괭이 아래의 풀은 뽑히다 만채 땅에 걸쳐있다. 호미를 사용했을 뿐, 아버진 풀을 뽑기보다는 주로 뜯기 때문에 늘 뿌리가 남아 문제다. 감자 캐러 갔다가, 아버지가 남긴 풀뿌리를 호미로 캐냈다.
후후후 웃음이 나온다. 부전녀전. 난, 성격이 급한 것도 아버지를 닮았고 대충대충도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서 나도 똥손이다. 아버지 손이 닿으면 문고리가 떨어져 나가고, 내 손이 닿으면 그릇이 깨지니......

아침 9시. 센터의 차량이 두 분을 모시고 갔다. 걸어서 차를 타시는 두 분의 모습이 오늘 따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을 회복하신 두 분이 감사할 뿐이다.
늘 손을 꼭 잡고 다시시는 부모님. 평화로운 일상이 이렇게 감사할 줄, 울컥 침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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