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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험난한 여정

요술공주 셀리 2024. 8. 15. 15:29

평소라면 하루 중 제일 뜨거울 오후 2시다. 점심 후의 짧은 휴식인데 "할까? 말까?" 앉아 있어도 도무지 가시방석이다.
1달 전쯤, "언니, 김장배추는 언제 심어요?" 물으니 윗집 언니는 "8월 중순"이라고 했다. 오늘이 그 8월 중순, 늦어도 주말까지는 김장배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허비한 체력은 바닥상태. 밭일을 하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남편이 도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남편도 더위를 먹었는지 "컨디션 노 굿" 이란다.

작년엔 배추 모종 50개를 심었다. 남동생과 아들에게 김장김치를 배달하고, 겨우내 맛있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장 김치는 아직도 한 통이나 남았다. 그러니 올핸 30 포기만 심을까 한다. 밭두둑 2개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러나 양이 문제가 아니다. 모종을 심으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봄에 씌운 검정 비닐을 우선 벗겨내야 한다.
구름이 덮은 하늘을 믿고 긴팔과 긴바지 모자와 양말까지 챙겨서 밭으로 내려갔다. 검정비닐은 벗겼으나 장맛비에 잡초가 정글이다. 이부터 뽑아내야 하는데, 호미를 잡자마자 위~이잉 달려드는 모기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시작도 하기 전에 벌레부터 물린담? 어제도, 오늘도 모기밭이다. 유일하게 맨살인 목부터 물렸다.

검정비닐 벗긴 두둑을 허물고 풀을 뽑는데 땀은 비 오듯 하고, 앉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워, 결국 아버지께 찾아갔다. "아버지, 김장용 배추 심으려고요. 거름 뿌리는 작업 좀 도와주세요."



90 초반인 아버진, 큰 키에 바람에 날아갈 듯 휘청휘청하신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힘없는 할아버진데 힘은 장사다. 곡괭이로 땅을 퍽퍽 내리치시더니, 거름 두포를 거뜬히 날라오신다. 엄마와 내가 도우려고 나섰다가 "여자들이 뭔 일을 한다고....., 저리들 가 앉아 있어." 하신다. 창고에서 일하던 남편이 내려와 합류하니 고랑 4개가 뚝딱 완성이 되었다. 이제 검정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어 배추 모종을 심으면 된다. 무와 갓 모종까지 심어주면 올 김장준비도 마무으~리.

 


오늘도 열일을 해주신 부모님. "아프지 말고 내년에도 도와주셔야 합니다." 기도를 한다.
건강한 하루, 무사한 하루, 보람찬 오늘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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