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언니, 환기시키려고 문 열어놨으니 이따 닫아줘."
"아, 그리고 냉장고도 한 번 확인하고, 설거지 한 것도 정리해 줘."
뭐가 그리 급한지, 동생은 서둘러 서울로 출발했다. 점심이라도 챙겨주려 했더니 소화가 안된다 해서 식사도, 커피도 함께 하지 못했다.
동생 부부는 여기 내려와 있는 내내, 일만 했었다. 전지를 하고 환삼 넝쿨을 뜯어내고, 물 새는 곳도 수리를 하는 등 그동안 하지 못한 밖의 일을 하느라 매일매일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여유가 생길까? 바쁜 시간을 보내는 동생과 룰루랄라 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만, 열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벌레에게 잎을 다 내주었다. 뭐, 벌레도 시골에선 함께 살아가야 하니 참아보려 했으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 결국 약을 치게 되었다. 세상에, 그 여린 잎을 죄 갉아 먹어버렸으니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무리 뿌리를 먹는 '무'라지만 이파리 없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런지......
구멍이 숭숭 뚫린 이파리가 내 마음인 줄 어찌 알았을까?
동생이 없는 집을 바라본다. 밖에서 바라보는 집은 늘 그 모습. 있어야할 회색 자동차도, 동생의 그늘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비어 있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동생이 다녀간 집은 늘 적막강산이다.
동생이 시킨 대로 문을 닫아주고 그릇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목의 배추밭. 배춧잎에 전염이라도 되었을까? 구멍이 숭숭 뚫린 내마음 한켠으로 시린 바람이 휑하고 지나간다. 느티나무 이파리가 툭하고 배추밭에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진 곳. 배추밭에서 난 길다란 오후의 끝자락을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