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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을 햇볕에 말리기 사흘째다.
첫 째날에도 딱새가 찾아왔지만, 이 녀석이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저 녀석이 글쎄, 땅콩 한 개를 물어가더니 1분이 멀다 하고 찾아오네."
"두 녀석이 교대로 오는데 한 놈은 깐 땅콩을, 한 놈은 껍질째 물고 가. 사람이 있는데도 겁도 없어. "
남편이 이렇게 말할 때도 "에이, 설마?"하고 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어쩐지 아침에 널었다 저녁에 거두어들이는 땅콩이 점점 가벼워진다 생각했었다. 건조된 만큼 부피가 줄어서려니 했는데, 딱새가 땅콩도국일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것.
쥐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고 엄마에게만 열심히 부탁했었다. 땅콩껍질을 제거해 달라고 하면서, "뚜껑을 꼭 닫아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엄마의 최애간식인 땅콩이 쥐를 불러와 작년 겨울, 동생네 집이 쥐의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땅콩 때문에 집안에서 서식한 쥐를 없애느라 엄청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땅콩 도둑이 딱새였다니......
"찌루륵" 내가 곧 갈 거야라는 신호를 보낸 딱새는 땅콩 근처의 데크 난간에 와서 먼저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가 주위를 한 번 살피고 나서야 땅콩 위에 앉있다. 그리곤, 잘 생긴 땅콩 한 개를 물고는 휙~ 줄행랑이다. 땅콩 한 개를 가져가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1분도 안 되어 다시 와서는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부부인 듯 꼭 두 마리가 오는데 한 놈은 깐 땅콩을, 한 놈은 껍데기 있는 땅콩을 가지고 갔다.
아이고, 아까운 내 땅콩!


현장에서 널 목격하다니, 나쁜 새 같으니라고.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다. 112에 당장 신고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 '딱새나라 경찰'은 '일요일엔 휴무'란다.
할 수 없이 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간단하게 깔개 한 겹으로 이불을 만들어 원천봉쇄를 해주었다.

"찌루룩" 신호를 보낸 딱새가 다시 날아왔다. 그런데 이 녀석, 덮인 천 위에 앉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금세 상황파악을 했는지, 그냥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나타난 딱새.
이젠 일회용 둥근 통으로 직진. 잠시 망을 보더니, 역시 땅콩 하나를 물고 휘익 날아간다.


그런데, 이 딱새. 일회용 그릇의 땅콩은 딱 한 번만 가져가고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 그릇엔 버리려고 쭉정이와 곰팡이 난 땅콩을 모아놨기 때문이다. 누가 새머리가 나쁘다고 그랬던고? 남편이 제발 가져가라고 흰 통의 땅콩 껍질을 까줬는데도 영리한 딱새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냄새를 맡아봤는지, 그새 먹어봤는지, 이 맛없는 땅콩은 자기도 사절한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