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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나른한 오후

요술공주 셀리 2024. 11. 7. 13:31

윙~~, 냉장고 소리가 없다면 째깍째깍 시계소리만 있을 집이다. 아침 일찍 노치원에 가신 부모님. 하루 종일 뒷꼍에서 땔감 정리를 하는 남편. 바람도 잠자러 간 산골짝엔 단풍조차 얼음땡을 하고 있다. 적막강산. 졸음이 걸어온다.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앉아 오랜만의 휴식을 즐긴다.

오늘도 새하얀 서리가 내렸다. 밤새 얼음땡 놀이를 한 듯, 이파리들은 모두 '일시 정지' 상태. 추위에 언 그 딱딱한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단 놀이에 집중하고 있는 어린애들 같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해님이 나와 "얼음땡" 하면 이파리들은 다시 제자리! 긴장도, 스트레스도 스스로 녹아 버린다.

세 통의 배추김치와 한 통의 깍두기, 알타리 김치를 하고 어젠 동치미를 담갔다. 월동 준비를 한 것이다. 올 김장의 슬로건은 '양은 적으나 다양하게' 다. 혼자서 직접 김장하기도 처음이다. 은퇴하자마자 배워서 시작한 '김치 담그기의 완성판'인 김장을 혼자 하다니, 스스로 대견하고 신이 나는 일이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적은 양이지만 장장 2박 3일에 걸쳐 완성을 했다.

"잘 돼 갑니까?"사도회 총무님이 전화를 하셨다. 성당 60년 사 홍보자료를 맡아왔으나, 김장과 남편 지인의 방문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오늘에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찾아보았다. 오랜만의 작업이다. 3년 전엔 날마다 하던 일인데도 손이 쑥스럽고 눈이 굼뜨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자가 눈에 익으니 이 일도 재미가 있다.
남편도 나도 일에 직진인 편. 12시, 김밥을 말아놓고 기다려도 남편이 올리 없다. 일 삼매경인 남편에게 발품을 팔아 찾아가서 1시가 넘었다고 말하고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성당 관련 컴퓨터 작업으로 어깨가 뻐근하다. 아침엔 매우 추웠지만 바람 없는 햇볕 아래는 따뜻하고 정겹다. 작업을 멈추고 데크의 햇볕을 즐긴다. 나른한 오후가 밀려온다. 어쩌다 바람이 일면 자작나무 노란색 이파리만 바쁘다. 바람은 키다리 아저씨 자작나무 이파리만 흔들고 있다. 잔잔한 마음이 늦가을 풍경에 잠시 머뭇머뭇, 그 틈을 비집고 너울너울 졸음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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