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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공주님을 만나다

요술공주 셀리 2025. 1. 4. 13:26

새벽까지 소곤소곤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우리 자매는 "왜 그랬니?" "그러지 마" 같은, 서로 상처를 주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좋은 말을 하기에도 우린 시간이 부족해"라고 말하는 동생이 그래서 나는 좋다. 남에게 하지 못하는 속엣말을 하고 남에게 쑥스러워 못하는 자화자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이. 짧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끼어들기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망설임 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으니, 날마다 전화를 해도 만나서 할 이야기가 또 생기는 게다. 마카오에서 완탕 먹은 일, 중국어로 소통해서 자랑스러웠던 일, 손녀랑 만나서 기뻤던 일 등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쏟아놓기엔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오늘 낮에 공주님들과 만날 약속을 했으니,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만 일어나지" 남편 때문에 깬 시간은 9시. "예네들 일어났나?" 남편에게 물으니 동생네 역시 아직 취침 중이라고......
조카며느리가 보내준 촉촉하고 달달한 파운드케이크로 아침을 먹고 나니 동생이 까치머리를 하고 내려왔다. "언니, 애들이 꼬꼬할미집에 가자고 난리래." 하면서 손녀들 아침 챙긴다고 서둘러 나갔다. 그러고 나서 30분도 채 안되어 조카며느리가 공주님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꼬꼬할미" 하며 달려오는 아림과 아정. 동생의 손녀들은 곧 내 손녀들이다. "아이고, 울 애기" 볼을 비비고 뽀뽀를 퍼부어도 반가움의 표현은 부족하기만 하다. 공주님들은 "어? 집이 변신했다"라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기억력이 대단하다. 부엌도 변신했네. 여기 계단이 뚫려있었는데 막혔네. 별 걸 다 기억하는 공주님들 때문에 집안이 들썩들썩. 애기들도, 새 집도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꼬꼬할미, 여기 무지개가 있어." 아림의 탄성에 따라간 곳엔 정말로 무지개가 있었다. 의자 위에 한 줄, 바닥에 한 줄. 공주님을 맞이하는 무지개 열차. 두 공주님들은 무지개 기차를 손가락에 반지를 만들어 꼈다. "와, 무지개 반지다"를 외치며 꺄르륵꺄르륵, 참 잘도 웃는다. "신기한 무지개네. 이 집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봐." 동생의 말에 두 공주님들도 "맞아", "맞아" 대꾸를 한다. 뭔 말씀을요, 내겐 두 공주님들이 무지개인 걸......



"할미, 이제 우리 집에 가자" 아림이 말에 자석처럼 따라간 동생네. 그네를 타면서도 꺄르륵, 놀이마다 꺄르륵, 과자를 먹으면서도 꺄르르륵...... 아이들은 어쩌면 저리 웃음이 많을까? 나도 아이들에게 전염된 웃음을 덩달아 쏟아낸다.



"꼬꼬할미 같이 가"하는 공주님들을 따라 가, 저녁으로 맛있는 갈비구이를 먹었다. 숯불구이에 따라다니는 온기가 미각을 돋우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이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오랜만의 외식.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더 귀한 시간. 아림공주님, 아정공주님. 오늘도 행복한 시간을 함께해서 고마웠답니다.




"할미, 우리 같이 성 쌓기 하자."라는 말에 이끌려 밤에도 우린 또 만났다. 우린 성도 쌓고 사랑도 쌓았다. 퀴즈 놀이도, 말 잇기도 하는데 9살, 5살 애기들의 어휘가 어른 뺨치듯 고급지고 수준이 높다. say good bye가 어려운 사이. 헤어지려니 공주님들이 "안돼" 하며 매달리는데...... 나도 진심이지만 이 아이들도 진심이다. 울기 바로 직전, 주위를 환기시켜 간신히 "또 만나자" 손을 흔들며 나오는데, 밤하늘의 별들은 왜 이리도 아름답고 총총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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