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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항아리와 모자

요술공주 셀리 2025. 5. 22. 16:59

"그게 언제였더라?"
된장을 담그고, 된장에서 분리한 간장이 있었는데......
그걸 까먹고 국간장을 사려고 했다. 그러다 장독의 간장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2년 전, 생전 처음 된장을 만들었는데, 간장은 그 때 생긴 덤이다. 2년여 만에 간장독을 열어보니, 간장은 처음보다 반은 줄어있었다. 수분이 증발해서 남은 간장은 장독대 밑에 낮게 깔려 있었다. 플라스틱 물통에 따르니 한 통도 다 채워지지 않은 양이다. 그러나 내겐, 대견한 간장 귀한 간장이라서 vip처럼 고이 고이 모셔두었다.





간장 보다 소금 결정체로 남은 찌꺼기가 더 많을 정도. 이 소금 또한 덤으로 얻었다. 그러나 내가 반한 건 간장도 아니요, 소금도 아닌 빈 항아리. 무엇보다 빈 항아리를 귀하게 모셨으니 일석이조의 수확이 되었다.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은 빈 항아리를 데크에 두었더니 존재감 확실한 테이블로 변신을 한 것이니 말이다.





내겐, 제주도에서 산 오래된 모자가 있다. 제주도 특산품인 감물을 들인 이 주황색 모자가 햇볕에 퇴색되고, 시간에 찌들어 볼품없이 변해버렸다. 십수년 된 모자를 버리고 새로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빨강 염색 물감에 담갔다가 꽃을 그렸더니 이 또한 새 모자로 변신을 했다.





"잠깐 놀러 갈게요." 전화한 이웃이 모자를 들고 찾아왔다.
"새 모자를 샀는데, 너무 밋밋해서 들고 왔으니 이쁘게 해 달라." 주문을 했다. 오호, 내가 모자에 염색했다는 소문이 어쩌다 이웃까지 가게 되었을까. 오전에 이어 또 다시 붓을 들었다. 군청색 모자를 요리조리 살펴보다 챙 안쪽에 흰꽃을 그려 넣었는데, 오 나쁘지 않다. 모자를 쓰면 살짝살짝 보이는 흰꽃이 아주 매력적이다. 모자의 바깥쪽에 그리지 않은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된 것이다.
빛바랜 모자의 변신. 밋밋한 모자의 또 다른 매력. 그림을 그린다는 건 바로 이런 재미 때문이기도 하다. 항아리 때문에, 모자 때문에 감사한 하루가 되었다. 아, 오늘도 잘 보낸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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