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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공학인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규율도 엄하고 활발한 성격이 아니어서, 남학생에겐 말도 못붙이고 친구도 만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려오는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생 때엔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친구인데, 40대에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나 20여 년 가까이 동창으로, 든든한 멘토로 지내고 있다.
동창은 튼튼한 회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성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꾸준히 성장하여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은, 성공한 친구 중 한 명이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재에도 밝고, 부동산에도 일가견이 있어 집을 사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친구와 상담을 했는데,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 친구라기보다는 인생의 '멘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남편이 처음 사업을 할 때도 먼 길을 찾아와 주고, '형님 형님' 하면서 남편에게도 깍듯해서 남편도 이 친구라면 대환영이다.
작년 가을, 원주에 볼 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전원주택에 관심이 있어 우리집에 잠깐 들렀는데, 하필 단풍이 절정인 때여서 좋은 인상을 받았나 보다. 내년 봄에 직원들과 놀러 오고 싶다기에 '좋다'라고 했더니, 정말로 오늘 내려온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 덕분에 봄 맞이 대청소를 했다. 겨울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가구배치도 바꾸었더니, 새로움이 생겨 내가 더 신이 났다. 개나리 꽃은 피었지만, 라일락과 매발톱 등 야생화와 초록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싱그런 바람과 청아한 새소리, 강원도의 깊은 골짜기를 느끼기엔 충분할 터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생강과 무우, 수세미를 직접 썰어 햇빛에 말린 재료를 넣고, 대추를 곁들여 푹 끓인 '건강한 생강차'와 엄마가 농사지은 땅콩을 볶아 준비하고, 식탁엔 막 피어난 조팝과 개나리도 꽂아 놓고 친구 일행을 기다리는데, 기다림이 이렇게 설레고 따뜻한 일인지 새삼 또 느낀다.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일에 기뻐하고, 따뜻한 일에 감동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믿음직한 김이사님, 든든한 임 차장님, 묵묵한 심 과장님과 친구가 도착하니, 화창한 날씨에 환한 사람들로 금상첨화! 강원도에 또 다른 에너지가 생겨났다. 젊은 에너지, 신선한 에너지, 일하는 사람들의 빠릿빠릿한 힘이 전해져 온다. 게다가 대표님은 '신뢰하는 직원들 때문'에 성공했다 하고, 직원들은 '챙겨주는 대표님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는,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니, 아름답기도 부럽기도 하다. 서로 힘이 되는 이 익숙한 에너지, 조용하던 강원도에 푸르름이 더해지고, 새소리도 왠지 더 우렁차게 들리는 듯하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식사를 같이 하고 차도 함께해서일까? 일하는 이야기, 힘들었던 경험담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경청을 해 주니 신이 나서 말을 했는데 앗, '말이 많았구나' 알았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 에고, 오늘도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한 날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내게 찾아와준 사람들이 편히 쉬어가고, 좋은 추억을 담아가면 좋을 텐데, 말을 많이 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손님을 대접하기보다 대접을 받은 느낌이어서 더 그렇다.
계획했던 영월을 가지 못해서 꽃 피고 초록이 싱그러운 5월에 '다시 오마' 했으니, 그땐 찾아준 사람들이 더 많이 힐링하고 즐거운 시간을 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