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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뒤의 사연(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5. 31. 11:22

드디어 끝없는 물소리를 뒤에 두고 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해발 2470미터. 한라산 높이를 한참 지나 올라왔다. 등산처럼 급경사를 치고 올라온 것도 아니고, 오솔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올라왔으므로 헉헉대거나 숨을 몰아쉴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모자를 벗어 짜니 물이 떨어질 정도다. 집들이 대략 10채 정도 될까, 모두가 오고 가는 트레커를 위한 로지(산장) 간판을 달고 있다. 겨울 비수기라 손님이 별로 없어 몇 집만 문을 열었다. 대개 봄, 가을 장사를 하고 여름(몬순)이나 겨울은 문을 닫는 집이 많다고 한다. 여기서는 로지 주인 정도만 되어도 자본가라 겨울에는 카트만두로 철수를 하고 로지는 문을 닫아 두거나, 함께 일하던 종업원에게 한 철 임대를 주기도 한다고 한다.

 

정글 뷰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짐을 2층 방에 옮긴다. 밖이 굳이 정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방은 깨끗하고 단출하다. 여기 어디서나 그렇듯 서너 평 되는 방에 침대 두 개가 다다. 옷장도 따로 없어 배낭과 카고백을 건너 침대에 부리고 오늘 밤에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 꺼낸다. 수건, 휴지, 칫솔, 치약, 슬리핑백, 핫팩 등등. 사는 게 이리 간단한데 그동안 무얼 그리 무겁게 메고 다녔을까? 최소한의 공간, 최소한의 음식, 최소한의 짐들, 나머지는 모두 불필요요, 과잉이고 사치가 아닐까? 가진 것도 없지만, 그래도 현재의 나의 현실이 분에 넘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여기 와서 자주 드는 생각이다. 밖에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해 본다. 방 밖을 나가서 복도 끝에 있다. 찬바람이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을 만큼 벽이 다 뚫려 있고, 우리나라 절의 해우소처럼 높지만, 이 정도는 훌륭하다. 무엇보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 바닥이 얼어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밤중에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곳, 영하 몇십 도의 바깥 화장실을 급히 달려가야 하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이다.

 

간단히 땀을 씻고 부엌으로 가니 아까 보지 못한 네팔 젊은이들로 난롯가가 가득하다. 네팔은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아궁이와 온돌은 없고 취사는 부엌에서 따로 불을 피워서 한다. 부엌을 가만히 보니 나무에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풀무(풍로) 같은 것이 있다. 어렸을 때 집에서 자주 썼던 풀무를 여기 와서 보다니 참 격세지감이기도 하거니와, 왕겨에 풀무를 박아 놓고 돌리면서 매운 연기에 눈물 찔찔 흘리던 가난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지금은 나아져서 최근에는 석유 곤로 같은 것을 쓰기도 한다는데, 우리 젊은이 중에서도 곤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공간을 이동하면 시간은 반드시 앞으로만 가지는 않는 법인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부엌 중앙의 난로를 독차지하고 모바일에 빠져 있는 저 젊은이들은 누구지 하는 의문이 들어 길을 함께 걷는 포터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가고 있는 강진 곰파까지 생필품을 배달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나라는 모든 물류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 골짜기까지 생필품을 나르는 것은 결국 사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찻길이 닿는 산 아래 큰 마을까지는 차로 실어 오고 어느 정도 길이 되는 곳까지는 노새로 가져오고 더 높은 고산마을에는 이렇게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날라주는 사람의 손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걸음이 우리보다 두 배는 빠른 이 사람들이 가져오는 생필품들이 고산을 오르는 우리 트레커의 음식이 되고 필요한 물건이 된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이 젊은이들의 발품이 여행객의 밥이 되고 여행객의 돈이 이들과 이들 가족의 밥이 되고 학비가 되는 순환과정을 잠시 생각해 봤다. 다 그러면서 사는 거겠지.

 

네팔은 세계 최빈국중 하나다. 2019년도 기준으로 1인당 GDP1,134달러로, 주로 농업과 관광, 해외송금으로 사는 나라다. 해외송금으로 먹고 산다니? 전통적으로 이 나라는 세계 최고의 용맹한 군인 구르카 용병을 수출하였고, 최근에는 중동, 말레이시아, 한국으로 인력이 수출되어 이들이 벌어들이는 해외송금으로 산다고 한다. 농사라고는 산비탈에 매달린 다랑논(계단식 논)에 오렌지 농사가 전부이고, 변변한 공업시설이나 서비스 산업도 없어서 젊은이가 국내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렇게 짐꾼이 되거나, 관광객의 포터 또는 셰르파가 되는 것이다. 트레킹 가이드가 비교적 수입이 많아서 대학졸업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고, 산업연수생이 되어 한국으로 가서 돈 버는 것이 그들의 코리안 드림이라고 한다.

 

사실 네팔에 대하여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4년인가 <한겨레>에 연재된 박범신의 <나마스테>라는 소설 때문이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환하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카르마()의 연속성과 결합으로의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카밀이라는 네팔 청년을 통해서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정착과 실패 과정과,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과 착취성을 신랄하게 다루는 르포가 담겨 있다. “내 친구 햑바가 생각나요. 걔도 처음엔 3000불 쓰고 산업연수생으로 왔어요. 김포시 어떤 금속 공장으로 갔는데요. 오자마자 여권 빼앗겼어요. 외국인 등록증도요. 숙식을 회사에서 제공하는 걸로 계약서에 쓰여 있었는데 오자마자 계약서 무효라며 새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강요했어요.(… …)(83)” 월급도 물론 계약대로 안 주고..

 

하필이면 왜 그때, 하루의 피곤한 노동을 마치고 난롯가에서 모바일 게임에 정신을 팔고 있는 네팔 청년을 보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무거운 짐을 메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그들의 격한 노동과, 마치 그들의 샹그릴라인 것처럼 한국으로 노동의 출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 앞에서의 일종의 죄책감이었을까? 미치도록 기막힌 풍경 뒤에 참담할 정도의 가난과 가혹한 네팔의 현실을 지켜보는 것이 나의 카르마였을까? 온 길이 그렇듯,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어서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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