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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여행을 계획한 사람에게 맞닥뜨리는 첫 번째 고민이 추위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여행 결심을 굳히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익스트림 방한복과 따뜻한 우모 슬리핑백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이것은 주로 히말라야 하면 8,000미터급 고소 등반하는 장면이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나, 사실 네팔은 아열대 기후의 나라로서 카트만두나 포카라 같은 평지에서는 겨울에도 몸이 더운 사람은 반소매를 입거나, 보통 사람이라도 가벼운 긴소매 옷을 입으면 생활하기에 무리가 없는 정도다. 2,000미터 정도의 저지대 산간에서도 낮에는 우리나라 겨울 등산복 정도면 산행하기에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히말라야에서는 산이 높아질수록 계절과 관계없이 한대 지역, 아니 극지방의 기후 특성을 나타낸다. 예고 없이 눈이 오거나 강한 바람이 불어 온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며, 꼼짝없이 누워 또는 앉아 눈이 뭉쳐 굴러가는 소름 끼치는 눈사태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8,000 미터 고봉을 등반하는 사람들의 산행기山行記를 보면 정상의 등반 성공 여부는 등반가의 체력이나 기술보다는 그날 기후에 달린 것 같다. 정상을 불과 100미터 또는 40~50미터 앞에 두고도 기후가 나빠 되돌아오거나 링반데룽(짙은 안개나 폭풍우로 인하여 방향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것)에 걸려 정상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산을 올랐다 하지 않고 산이 허락해서 올랐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악인 엄홍길은 칸첸중가 가는 길 8,500미터 비박 상황에서의 추위와 졸음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영하 20도가 넘는 8,500미터 낭떠러지 위에서 등을 굽히고 앉은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꽉 다문 어금니가 부딪힐 정도로 추위를 느끼면서 덜덜 떨었고, 관절 마디마디가 굳어가는 듯 온몸이 뻣뻣해졌다. 접힌 두 다리를 펴고 움직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곧 그것마저도 귀찮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얼음 속을 파고 들어간 두 발에 달린 아이젠은 꼼짝하지 않았다. 물 한 모금이 간절했고,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들이 내 몸속으로 흘러들 것인가(<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1920년대 남장을 하고 금단의 땅 티베트를 잠행했던 프랑스의 위대한 여성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도 대략 5,700미터 되는 티베트 가는 고갯길에서 추위와 졸음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의 산책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가다 보니 고지대의 초원에 드문드문 자란 나무 덤불이 보였다. 이 일대에서 나무가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불을 피우지 않고 밤을 지새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눈 덮인 산꼭대기에 불어와 제법 넓은 계곡 전체를 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바람이 점점 거세졌지만 피할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바삐 움직여 열을 내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처 방법이 없었다.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무려 열아홉 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갈증과 허기를 참아가며 강행군을 한 것이다. 의외로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은 견디기 힘들었다(<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
고산에서의 추위는 견뎌서 살거나, 얼어 죽거나, 또는 고도의 수행 방법을 익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라마승들은 한겨울에 물에 젖은 천으로 알몸을 감싸는 방법으로 배꼽 안쪽의 차크라를 열어 눈 속에서도 지내는 ‘뚜모’ 수행을 행하고, 힌두 수행자들은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물 한가운데에서 손을 들고 몸을 굽힌 채 곡기를 끊는’ 수행을 한다고 한다(<임현담, 히말라야 있거나 없거나>). 앞에서 언급한 넬도 추위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에서 불길을 피우는 수행 방법인 ‘‘추모 레키앙’을 티베트 수도승에게서 전승받아 이를 통해 젖어있던 부싯돌을 말려 불을 지펴 밤을 견뎠다고 한다.
물론 현대에 이미 난 길을 가이드와 포터의 도움을 받으며 걷는 트레킹은 고소등반과, 한뎃잠을 자야 하는 근대의 잠행 여행과는 다르겠지만, 한국의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바람과 극강의 추위를 견디며 고행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네팔의 산간과 시골의 집들은 대개 돌이나 나무로 지어져 있어 차가운 바람이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다. 따로 난방도 하지 않는다. 네팔 사람들은 고소와 추위에 견디도록 심장을 단련시켜 온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편리와 난방에 적응해 온 사람들이라 이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히말라야의 현자 임현담’ 같은 분은 쾌적한 게스트하우스를 버리고 추위와 들짐승의 위협을 무릅쓰며, 더러 프라이나 슬리핑백 하나만 믿고 비박을 하며 서향빙염雪香氷艶의 雪香氷艶 경지를 체험하는 것 같으나, 나 같은 사람은 행여나 히말라야 엄동설한의 비박은 상상조차 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현지 고수 수도자들의 수행 방법을 익히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어디서든지 산에서는 특히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에서는 저체온증을 더 조심해야 한다. 저체온증은 낮은 온도에서 체열의 상실로 발생하는데 고산에서는 호흡, 땀, 발열, 바람 등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나타난다. 저체온증이 나타나면 피곤이 증가하고 움직이기 어려우며,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졸리게 되며, 심하면 뇌 혈류의 기능 저하와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혈압이 내려간다.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주의하는 게 핵심. 밤에는 온도가 상상할 수 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밖보다는 아늑한 방 안에서 슬리핑백에 몸을 집어넣는 것이 상책이다. 저녁을 먹으면 몸을 대충 씻고 새 속옷과 양말로 갈아 신고 낮에도 입지 않았던 누비바지와 익스트림 방한복을 입고 슬리핑백을 따뜻한 방으로 삼아 잠을 청한다. 조금 열어놓은 슬리핑백의 지퍼 위로 부는 찬바람에 코끝이 찡하다. 보잘것없어도 내 집의 편안함과 따뜻함은 얼마나 위대하고 간절한 것인가. 굳이 ‘꾸뻬 씨와 행복 여행’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뼛속까지 사무치는 새로운 진실. 정녕 위대한 것은 태양뿐이라는 것. 행복이란 ‘날진’ 물통 하나 또는 슬리핑백 속에서 밤새 열기를 지속해 주는 핫팩 하나 그 사소함 속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