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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지진 피해를 당한 랑탕 마을(3430m)에 도착하고 위령탑에 묵념과 코라를 한 이후로 계속 숙연한 마음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늘 하루 묵기로 한 선 라이즈 롯지는 신축 건물이라 깨끗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추운 날씨에 미끄러운 얼음 바닥을 디디고 밤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고역이다. 부엌에 들어가 샤우니(여주인)와 인사를 하고 잠시 대화를 한다. 남편을 잃은 이분도 큰일을 당하고 나서도 겉으로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몇 년 지나면서 슬픔과 아픔을 속으로 속으로 꼭꼭 숨겨 두었나 보다.
오늘 저녁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참에 한국인 트레커 팀으로부터 식사를 함께하자는 초대를 받았다. 모처럼 우리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 팀의 가이드는 한국 이주 노동자 출신이어서 우리말이 유창하다. 능숙한 말로 그가 인솔하는 쿡들의 한국 음식 실력이 좋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구수한 냄새가 기분을 고조시킨다. 음식은 미각에 앞서 후각이다. 코와 입이 가까이 있는 것은 조물주의 선견지명이다.
오늘 메뉴는 부대찌개. 평소에는 그 이름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했던 음식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6.25 전후 미군 부대에서 한국 군속과 이른바 ‘양색시’들에 의해 블랙마켓으로 빠져나와 장터에서 꿀꿀이죽과 함께 가난한 한국인의 밥이 되었던 음식이다. 주로 의정부나 파주와 같이 미군 주둔 지역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화된 상품이 되었다. 한때 미국의 용병 같은 군인으로 근무하던 시절, 미군과 미국에 대한 감정 같은 것도 없지 않아 가능하면 먹지 않으려던 음식이지만, 입맛에 맞지 않아도 오로지 걷기 위해 현지 음식에 적응하고 있는 형편이라 이날의 부대찌개와 딸려 나온 한국식 반찬은 세상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쌀밥과 찌개 맛에, 오랜만에 한국 사람끼리 떠드는 정담에, 산길을 걷는 고생담 또는 무용담까지 더해져 밥 먹는 시간은 행복했다. 팀장 격인 이성운 사장님은 힘든 길을 다른 분보다 먼저 오르고 내리면서 동영상 촬영도 하고, 가이드와 포터, 쿡 들을 지휘하시는 부지런함과 친화력이 있는 분이다. 함께 오신 분들도 히말라야 트레킹과 알프스 반데룽을 여러 차례 하신 분들 이어서 등산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분들이시다. 그분들의 히말라야와 알프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해 혼자 했던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와,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에서 바라본 알프스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 TV에서 본 돌로미테 이야기를 보태면서 여행 이야기가 늦게까지 이어졌다.
넉넉한 인심과 오랜만의 포만감으로 방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음식은 참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여행할 때는 현지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머릿속의 생각과 관계없이 외국 음식보다 한국 음식이 좋고, 경상도, 전라도 음식보다 충청도 음식이 좋고, 다른 집 음식보다 어머니와 아내의 음식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기내식에 딸려 나온 고추장 튜브를 가져오고, 짐이 무거워도 밑반찬과 컵라면을 가져오고, 트레킹 규모가 큰 경우 한식을 요리할 수 있는 쿡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다. 음식은 자연적이면서 문화적인 현상이다. 때로 윤리적인 규범의 요구를 받는다. 사람들은 음식의 재료를 제가 살고 있는 토양에서 구하고 기후에 버티고 견딜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 한국 사람들이 먹기 힘들어하는 고수는 동남아에서는 열대 기후를 이기기 위한 필수품이다. 요리하는 방식,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나라와 지역별로 다르며, 먹는 행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따지고 산다.
먹어야 산다. 지당한 말씀이다. 인간은 먹는 인간이다. 아무리 고상한 삶을 살아도 삶의 대부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며, 먹을 것을 구하는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본인 헨미 욘은 지구 상의 인간이 어떻게 먹는지, 먹고 사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먹는 여행’을 했다. 그 보고서가 <먹는 인간>이다. 인어(듀공)를 먹는 나라가 있고, 더러운 물에 흙 묻은 빵을 굽는 나라가 있고, 먹을 것이 넘쳐 하루에도 수십만 톤의 음식을 버리는 나라가 있으며, 남은 잔치 음식을 뒤로 빼서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팔고, 그것도 며칠 지나 시큼하여 버릴 지경이 되어서야 값이 싸진 잔반을 사 먹는 방글라데시 뒷골목도 있다. 모가디슈에서는 소말리아 평화유지군에 소속된 미국과 유럽의 군인들이 먹는 풍성한 음식을 서빙하는 현지인들의 국적 불명의 빵 한쪽에 의지하는 삶이 있다. 고양이 통조림을 생산하는 필리핀 노동자는 도쿄의 고양이 3마리가 한 달 먹는 통조림 값에 해당하는 월급으로 제 밥을 짓고 사 먹어야 하며, 심지어 제가 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잡아 와 고기와 국을 끓여 먹었던 필리핀의 일본군 패전 잔류병들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살아남기 위한 밥 한 끼가 있다면, 푸아그라와 송로버섯 등을 먹으며 식도락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우아한 커피 한 잔의 낭만을 즐기는 선진국 사람들 뒤에는 뜨거운 산지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커피 체리를 분류하는 노동을 통한 쥐꼬리만 한 임금으로 먹고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독일 통일 이후에 동독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서 터키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자, 실직한 이들이 운영하는 케밥 식당이 전국적으로 늘어났는데, 케밥 냄새를 싫어하는 네오 나치스트들의 터키인에 대한 살인과 폭행과 방화가 비례해서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음식은 매우 정치적이기도 하다. 식욕에는 민족이 없지만, 음식은 국적의 구분이 있고, 그 구분이 차별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터키의 케밥이 그렇고, 인도 주변 국가의 카레가 그렇고 한국의 된장과 마늘이 그렇다.
네팔에서도 여행객의 밥과 현지인의 밥이 다르다. 또 길 위의 밥과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차려지는 음식이 다르다. 길을 걸으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다고 불평을 하기 전에 상도 차리지 않고 접시에 담긴 소박한 음식들을 소중하게 먹는 저 네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헨미 요는 말했다. “이상하게 보여도 이상한 음식은 단 하나도 없다. 가는 곳마다 지금 그 음식을 먹는 인간이 있고, 지금 그 음식을 먹는 데는 넘치도록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드라마가 펼쳐진다.” 오로지 그 인간극장의 핵심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유별나게 먹고 마시기를 뒤풀이하며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한 프랑스 미식가는 “짐승은 먹이를 먹고, 사람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라고 했는데,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거나 거만한 사람이다. 미식가들이 사는 선진국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전쟁터가 된 나라에 짐승과 다름없이 ‘먹이를 먹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갑오년의 말처럼 밥이 하나님이다. 먹고살만한 사람들은 스승 틱낫한의 말처럼, 먹을 때도 먹고 있다는 사실, 먹는 것의 내용, 먹고 있는 것들의 원천과 경로를 알아차리는 명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먹는 일은 삶의 시작이며 삶의 요체다. 모든 여행은 먹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