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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진화(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6. 20. 12:56

강진 곰파(3,860m)30여 채의 롯지로 구성된 마을이다. 여기도 2015년 지진으로 피해를 당해서 개축하거나 신축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마을 초입에 곰파(사원)가 있고 뒤로 강진리(4,770m)가 서 있다. 강진리를 중심으로 보면 왼쪽으로 랑탕리룽(7,727m)과 랑탕리룽 2(6581m)이 설관을 쓰고 우뚝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체르고리(4,984m)가 버티고 있다. 체르고리 가는 길 아래로는 랑시샤카르카(4,160m) 협곡으로 가는 길이 길게 뻗어 있다. 길 아래로는 길고 넓은 너덜겅이 산 안쪽으로 깊숙이 펼쳐진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장관이다.

내가 묵은 롯지는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한국인 출입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각종 여행사 안내서와 산악회 리본이 천장에 만국기처럼 걸려 있고, 고산 트레킹의 감격과 고산증의 고통을 적은 한글 낙서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안쪽으로 대통령의 방이 있다. 18대 대선에서 낙선한 문재인 대통령이 랑탕을 걸으며 묵었던 방이라고 한다. 메뉴에도 김치찌개, 닭볶음탕, 신라면 등 한국 음식이 있다.

트레커는 보통 여기가 최종 목적지다. 여기서 쉬다 내려가거나, 여기를 베이스로 해서 강진리나 체르고리에 올라갔다 다시 여기에서 쉬고 걸어 내려간다. 아니면 헬기를 타고 하산한다. 마을의 넓은 마당에는 텐트 여러 동이 쳐져 있다. 그들은 트레커가 아니고 등반가들이다.

산은 보통 종교나 군사적인 목적 또는 광물이나 식물 채집 등의 학문적 목적을 위해 오르고 탐구되었으나, 취미 또는 여행으로서의 트레킹과 등반은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세계 일주 여행을 했던 여행가들도 본인이 대륙 구석구석을 직접 다닌 게 아니라, 하인을 시켜 새로운 지역의 이곳저곳을 다니게 하고 그들이 보고 듣고 온 것들을 배 안에서 받아 적었다. 우리나라의 양반들도 대개 그랬다. 직접 한다고 하는 사람이 한 일이라는 게 고작 하인의 지게나 가마에 올라앉는 것이었고, 그런 식으로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의 유람기를 남겼다. 걷기와 오르기는 오로지 아랫것들의 노동이었고, 기록하는 것은 상류층 사람들의 유희와 문화였다.

장거리 도보여행이 시대적인 유행이 되기 시작한 곳은 영국이었다. 18세기 낭만주의 사조와 산업혁명의 영향 덕분이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 남매는 친구들과 함께 호수 지방을 걸었고, 걷기는 시인의 영감에 작용하여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사람들은 점차 더 멀리 걷기 시작하였다. 건축의 경우, 귀족들은 담을 헐어 저택의 인공 정원을 자연의 품으로 넓혔고 정원을 걷는 것이 상류층의 취미가 되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청춘 남녀들이 저택의 정원을 걸으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 장면들은 바로 이 시대의 풍조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거친 자연과 황야로 돌리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산업혁명은 공장 노동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함께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가를 제공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자연은 이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주변의 산과 호수들은 탐방하고 즐길 수 있는 도전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교외로 나가고, 점점 더 멀리 있는 시골까지 걸어가게 되며,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르고 암벽을 타게 된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2,000m가 넘는 산이 없는 저산 지대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중상층 사람들은 이후 영국을 벗어나 점차 알프스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 알브레히트 폰 할러의 서사시 <알프스>와 터너의 그림책 <알프스 스케치북>은 알프스 여행과 등산에 대한 열풍을 불러오게 된다. 생계를 위해 매일같이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어진 도시 신흥 중산층은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골몰하게 되는데, 낭만주의 사조와 맞물려 이들은 시골로, 알프스로, 알프스를 알 만큼 알게 되자 히말라야로 등산의 폭을 넓히게 된다. 히말라야는 이렇게 영국인에게, 그리고 유럽 사람들에게 열렸다. 이후 히말라야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원정대의 각축장이 된다.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힐러리는 뉴질랜드 사람이지만 영국 원정대의 한 명이었고, 계속된 실패로 독일 사람들에게 운명의 산이 된 낭가파르바트는 독일 원정 대원이었던 오스트리아인 헤르만 불에 의해 열린 사실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사이먼 톰슨은 <영국 등산 200년사>에서 이렇게 영국 등산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면서, 고소 등반가들을 심미주의자와 영웅주의자로 분류하고 있다. 호기심과 탐구심, 정복욕과 영웅심 등이 결합된 등산은 국가 대항전에서 개인 대항전으로, 봉우리 수집의 등정주의에서 과정 중시의 등로주의로, 이제 정당한 방법으로의 알파인 스타일로 진화해 가고 있다.

, 아무튼 네팔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국에서의 이런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히말라야에서 등산과 트레킹의 길을 열게 하였다. 8,000m 고소 등반이 세계적인 관심과 경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교통의 발달과 함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대중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심미적 욕구에 따라 히말라야의 산길을 걷는 트레킹이 또 하나의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지금 수만 명의 외국 사람들이 네팔에 몰려들고 있다. 트레킹은 고소 등반과는 분명 다른 것이지만, 트레킹이라고 해서 마냥 낮고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워낙 히말라야가 고지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0003,000m 높이의 길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랑탕 계곡이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등 유명한 산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인 트레킹 코스가 있는가 하면, 네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횡단하는 네팔횡단트레일(GHT)이 있다. 또한 GHT에도 높은 길을 걷는 하이루트가 있고, 낮은 길을 걷는 컬쳐루트가 있다. 하이루트는 평균 고도 3,0005,000m로 길이가 대략 1,700km이고, 최고 높이는 6,190m이고 대략 160일 정도가 소요된다. 컬쳐루트는 2,0003,000m의 비교적 낮은 지대로 대략 걸어서 100일 정도 걸리는 1,500km 코스다. 대부분은 대중적인 코스를 선택하지만, 좀 더 전문적인 여행가들은 GHT를 걷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의 최고 높이와 비교하면 고소 등반과 트레킹을 구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기도 하다. 등산과 등산 아닌 것을 기어이 구분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아닐까? 기막힌 풍경 앞에서 목숨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가끔 있다. 불교에서는 이런 걸 천화遷化라고 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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