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라인홀트 메스너의 산서(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6. 27. 13:48

외국의 산악인들은 우리와 달리 자신의 외로운 등반 경험을 기록으로 많이 남기고 있다. 본인이 직접 쓴 글도 있고 산악 작가들의 대필 또는 대화를 통해 남기고, 산악영화제의 스크린으로 걸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산악 서적 출판의 협소함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문 출판사가 있다. 하루재클럽이다. 클라우드 방식 회원 제도를 운영하며, 등반사, 등반기, 등반가, 등반 가이드를 주제로 등산 서적을 계속해서 번역 출판하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등반가 중에서 라인홀트 메스너는 등반과 출판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히말라야 14좌를 처음으로 올랐으며, 무산소, 단독, 동계, 초등, 신루트 등 여러 측면에서 고소 등반의 새로운 기록과 영역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무려 20권이 넘는 산서山書를 남겼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것만도 10권이 넘는다. 그중에서 주목하는 것은 <벌거벗은 산><검은 고독, 흰 고독>, 그리고 <나의 인생, 나의 철학>이다. <벌거벗은 산>(‘벌거벗은 산은 현지 주민들이 낭가파르바트를 부르는 이름이다)은 원정대의 공식 보고서가 메스너의 입장을 곡해하고 비난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그가 직접 1970년 낭가파르바트 초등初等에 대하여 쓴 개인 보고서다. <나의 인생, 나의 철학>70세가 되었을 때 등산과 관련하여 70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인생의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게 가장 인상이 깊은 책은 <검은 고독, 흰 고독>이다. 첫 번째 등정에서 죽은 동생을 찾기 위하여,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낭가파르바트를 다시 보기 위하여, 사랑하던 사람을 잊기 위하여 세 차례의 시도와 실패 끝에 마침내 그의 산낭가파르바트에 두 번째 오른 등정기라고 할 수 있다. 가능한 그의 말을 다치지 않게 책 한 권을 요약해 본다. 고소 등반의 불안과 고독감과 시행착오와 모순을 직접 느껴 보시라. 인용부호는 생략.

가파른 암벽을 오른다. 숨이 가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몸이 마비된 듯하다. 싸늘한 텐트 안인데도 몸에서 땀이 난다. 머리 위로 보이는 엷은 텐트 천에 서리가 엉겨 있다. 혼자 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공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무서움에 계속 소리를 지르고 싶다. 졸음이 쏟아지는 가운데 미리 생각해 둔 등반 루트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지만 갑자기 고독이 물밀듯이 밀려든다. 내가 오르고 있는 이 암벽은 너무도 거대하여 어디까지 올라왔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발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다. 나를 둘러싼 공포는 내 자신을 두려움에 덜덜 떠는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 부질없는 일이야. 이제 그만두자.” 잠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해야만 했다. 새벽 다섯 시, 날이 밝기 시작할 무렵 나는 하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정리된 줄로만 알았던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금 낭가파르바트 디아미르 측방 능선이 우뚝 다가섰다. 그래, 어쩌면 오를 수 있을지도 몰라. “낭가파르바트를 혼자서!” 나는 앞으로 올라가야 할 루트를 바라보았다. 이곳 비박 지점에서 정상까지 가려면 2~3일은 더 걸릴 것이다. 출발 직전 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다. 대립하던 두 마음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나는 따뜻하게 옷을 입었다. 두터운 방한복이면 추위는 걱정 없을 것 같다. 올라가야 한다. 그사이 날이 밝았다. 보랏빛과 잿빛의 중간색으로 변한 하늘은 음침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야 할까. 밤새 갖가지 불안이 몸 안에서 요동친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때 갑자기 나 자신이 산을 내려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은 얼음의 통로를 지나 베이스캠프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올라가고 싶었고 계속 오르려고 했는데, 몸은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몸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단독 등반에 대한 끝없는 애착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낭가파르바트로 향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등반가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용기와 힘과 마음의 평온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망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럴 때면 지난 일도 다가올 일도 모두 내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나는 어떤 일이건 그것이 나에게 전부일 때 행동한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단독 등반. 나 이전에 몇몇 사람이 8,000미터 봉을 혼자 오르려고 한 적이 있다. 모리스 윌슨이 1934년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했으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캐나다인 덴만 역시 같은 산을 겨냥했으나 그가 도달한 곳은 겨우 노스콜 밑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베이스캠프로부터 2,400미터 위다. 나는 무전기나 신호탄 등 그 어떤 위험 신호도 준비하지 않았다. 내 미니 텐트는 얼음 처마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는 몹시 지쳐 매트리스 위에 베개 대용으로 놓아둔 아노락에 머리를 파묻었다. 갑자기 몸이 공중에 붕 뜬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내가 아주 가벼워진 듯했다. 그러나 다시 힘없이 쓰러졌다. 피로와 해방감이 이렇게도 교차할 수 있다니!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한다. 분명 나는 아니다. 상대방의 모습이 내 시야에 보이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틀림없이 혼자니까.’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조금씩 현실을 인식하자 가슴이 답답해지고 괴로워졌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 나 혼자라는 것, 이런 절대 고독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면 가슴속에 억압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것은 바닥 저 깊은 곳에서 나를 억압하는 절망과도 같았다. 이 절망은 너무나 힘에 겨워 울고 싶을 정도였다. 텐트를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자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그저 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티케’(‘됐어를 뜻하는 펀잡 지방의 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를 입 밖에 내뱉었다.

나는 눈을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악전고투의 세 시간이 지나고 오전 열 시가 되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상까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체력을 소모하면 하산마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직면하자 정상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포기하느냐 그대로 밀고 나가느냐의 갈림길이 당장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최후의 수단을 시도하기로 했다. 머리 위의 바위를 오를 수 있다면, 그리고 눈사태의 위험만 벗어날 수 있다면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체력소모가 극에 달하면서 모든 사고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지친 가운데서도 모든 게 분명했다. 극히 간단한 움직임도 내게는 철학 체계와 다름없이 중요했다. 나는 사다리꼴의 정상 벽을 바위 터를 이용해 천천히 올라가는 데 애를 먹었다. 잠시 쉬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서쪽으로 넓고 눈이 없는 땅이 보였다. 그 위에 구름으로 된 안개가 투명한 베일처럼 뒤덮여 있었다. 주위는 사뭇 공허하고 차가웠으나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아름다웠다. 산소가 희박한 대기 속에서 피로에 지친 몸으로 중력에 저항하며 전진하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정상 능선의 공기는 여전히 맑았으며 하늘은 푸르다 못해 거무스름했다. 저위에서 세상은 정말 끝나는 걸까. 헐떡거리며 숨을 쉬면 침이 흘러 턱수염에 얼어붙었다. 귓전을 울리는 허파 소리와 점점 빨라지는 심장 고동 소리가 한꺼번에 머리를 울려 견딜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나는 사방이 절벽을 이룬 만년설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것을 마음속에 기록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웅장한 느낌도 아니고 위압당한 느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숨을 돌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잠시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