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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장소성(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7. 6. 09:20

인생은 장소가 결정한다. 과한 말인가? 그럼 결정이라고 하지 말고 의존이라고 해두자. 어떻든 장소는 개인 또는 사회의 삶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막과 초원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몽골족의 흥망성쇠와, 섬과 바다의 상관관계를 배제할 수 없는 영국의 세계 제패 같은 큰 이야기는 묻어두더라도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의 영향은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영향은 유전자 못지않은 영향을 두고두고 미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강마을 사람은 강물 소리를 들으며 산다. 물이 노래하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들을 줄 안다. 가뭄과 홍수에 지르는 비명을 구분할 줄 알고, 평상시에 유유하게 흐르는 물의 평안을 즐길 줄 안다. 봄의 물소리는 부드럽고 여름의 강물은 마치 코를 골며 자는 사내만큼 거칠다. 가을의 강물은 단풍 한 잎 물길에 실어 나를 만큼 운치가 있는가 하면, 겨울 강은 고요하고 참을성이 있다. 강마을 사람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쩡, 쩡, 쩡 하고 우는 강울음 소리를 들을 줄 안다.
산마을 사람들은 산에 의존하며 산다. 특히 이곳 히말라야와 같이 높은 지대의 사람들은 산을 숭배하고 산다. 산은 인간이 함부로 마음먹는 대로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고, 골짜기도 길고 깊어서 인간의 의지로 개발하고 어쩌고 할 수 없는 곳이다. 골짜기의 한구석에 ‘붙어서’ 마을을 이루고 온도의 변화에 따라 야크 같은 짐승을 몰고 여름과 겨울 산을 오르고 내리며 살 뿐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산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하늘과 함께 산은 신화의 세계에 속해 있다. 어쩌겠는가? 그저 산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며 엎드려 우러러야 할 숭배의 대상인 것이다.
산속의 마을들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고산지대의 길은 대개 위와 아래, 높이로 연결되어 있지만, 라마호텔에서 코인사쿤드로 가는 길 중에서 툴레샤브로로 가는 길은 오르고 내리며 산에서 산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옆에서 옆으로 가며 연결된다. 깊은 골짜기를 걸으면서 이쪽 산길에서 골짜기 저쪽 산길을 보면서 걷는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건너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골짜기의 끝까지 올라가서 저쪽 마을로 연결된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목월의 시에서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구름에 달 가듯이 산속으로 쭉 뻗어 있다. 구름에 달 간듯한 길의 인상은 안나푸르나 코스에서 촘롱에서 뱀부로 가는 사행천과 같은 길과 비슷하다.
이곳 사람들은 길 위에 있고, 산속에서 있으며 이 산중의 자연을 내면화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 자연이 종교 안에 들어와 있으며, 자연의 색상과 선線이 예술 안에 들어와 있다. 이곳 사람들은 높은 하늘과 바위 아래서 차가운 흙과 아침의 태양과 오렌지가 떨어진 자리에 남은 상처 입은 겨자 꽃 내음을 들이마시고 살아야 한다.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동안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바람 속에 춤추듯 하늘거리는 연녹색 줄기로 뒤덮인 다랑이 밭들을 보고 살아야 한다. 떨어진 잎사귀들과 안개가 떠받치고 있는 하늘, 오전 맑고 오후 흐린 날들, 우기가 되면 산의 물기를 배수하며 밭으로 흘러넘치는 개울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이곳의 작가들은 이곳 구릉과 산에서 흙과 바람과 물과 삶과 문화로부터 배우고 이들로부터 색깔을 빌려올 수 있는 것이다. 줄지어 늘어선 싸그(시금치) 밭에서 직선을 배우고, 구릉과 산에게서 연필 획을 위로 긋는 법을, 흐르는 개울로부터 다시 내리긋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이 메고 있는 도코의 가죽끈과 농부들이 머리에 쓴 모자와 손에 든 낫에서 곡선과 원을 배우며, 구릉의 높이와 골짜기의 깊이에서 삶의 본질을 배우는 것이다(나라안 와글레의 ‘팔파스 카페’에서 발췌 요약).
시인과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공간과 장소는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화가 폴 고갱의 불행한 개인적 실패가 타이티 섬으로 그를 이끌지 않았다면 강렬한 색채와 원시의 모습을 담은 그의 위대한 작품은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타이티 섬은 관습적이고 인위적인 파리 화풍을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과 바다와 빛의 새로운 영역을 차용할 수 있는 세계였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민중의 입장에서 노래한 장편 서사시, 신동엽의 ‘금강’은 왜 제목이 하필 금강이었을까? 어린 시절 시인의 가슴에 흘렀던 금강의 물줄기가 시로 형상화된 것이었으리라. 자연은 일반 개인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영감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여행은 공간이동을 통하여 장소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 자신이 평생 보고 느낀 협소한 장소성의 의미를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인식 탈피다. 도시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대자연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고, 산속에서만 살던 사람들은 도시에서 기획과 창조의 위대성과 세련미를 배울 수 있다. 국가 간의 이동은 시야를 더 넓혀준다. 특히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라마호텔에서. 툴레샤부르로 가는 길은 드라마틱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밋밋하고 길고 먼 길이었다. 더더구나 어지러운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걸으면서 길의 의미를 반추하며, 황규관의 시 ‘어지러운 길’을 떠올렸다. “큰길은 오솔길이 없으면 무너진다/ 그래서 한때는 큰길이 열리고/ 저물녘이 되면 슬그머니 뒷길이/ 밝아지는 것이다 오솔길을 가다가/ 눈부신 머리카락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소음 가득한 큰길로/ 다시 내딛고 마는 것이다”, “길은 하늘이다/ 떠나지 않는 절망이다/ 길은, 그래서 꺼지지 않은 숨소리이고/ 발걸음을 생산하는 어둠이다” 마을에 도착하자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짝 겁이 났다.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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