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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은 난민이다(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7. 15. 09:01

어쩌다 마을 7

 

농촌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지럽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기가 어려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농촌은 생산성 측면에서나 복지적 측면에서나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 농민 연평균 소득이 1,000만 원이고 이것도 안 되는 농가가 60% 이상이란다. 농촌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농사소득보다는 노령연금이나 자녀들이 주는 용돈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자녀들의 이혼이나 생활고로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은 손주 키우기는 덤이다. 조손가정이나, 외국인 며느리까지 들이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독특한 가정 장르까지 생겼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자기 몸을 돌볼 수 없는 노인들은 다른 동네에 있는 요양원에 가고 자기 동네에 들어선 요양원에는 도시의 노인들이 들어와 산다. 농민은 제 땅에서 살고 있지만 표류하는 난민인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생각 있는 부모들의 단호한 입장은 자식들을 어떻게 하든지 탈농업, 탈농촌 시키는 것이었다. 약간의 여유가 있는 집의 공부 좀 하는 자식들은 상급학교 진학에 목을 매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장 노동자로, 도시로 아이들을 내쫓았다. 그렇게 하여 한때 인구 70%의 농부는 현재 인구 대비 노인 4%의 산업구조가 되었고 서울과 경기는 전체 인구의 1/2이 복딱복딱 모여 사는 난민 도시가 되었다. 도시는 도시대로 과잉 인구와 이에 따른 주택문제와 과잉 자원 소비 등의 문제가 있지만, 농촌은 반대로 점차 인구 소멸 지역이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공장들로 인해 또 다른 도시의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다.

 

농촌을 벗어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배우고 믿고 길들여졌던, 그래서 죽어라고 노력해서 탈농촌 한 내가 평생 표류하며 살다가 이제 일을 마치고 퇴직해서 농촌 근방에서 얼쩡대고 있다. 농촌을 떠난 난민이 농촌으로 다시 돌아온 난민이 된 것이다.

고향은 아니지만 내가 일하던 지역의 농촌 근방에서 얼쩡대면서 노년의 삶을 이러쿵저러쿵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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