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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주의 건축가(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8. 1. 11:29

어쩌다 눌노리 23

 

건축을 뭐라 뭐라 해도 결국 돈이 드는 일이다. 돈이 들어 집을 짓지 못하고 돈이 많이 들어 원하는 모양대로, 원하는 크기대로 짓지 못한다. 결국 생각보다는 돈에 맞춰 집을 짓고, 내 돈에 맞추어 집을 지어줄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오우근함은주 건축가의 고민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집은 거기서 시작된다.

 

독립을 앞둔 많은 이들, 혹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의 하나가 상업적인 건축을 할 것이냐, 예술적인 건축을 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그런 고민을 수없이 해야 할까? 건축을 작품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형태의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용도를 생각하고 짓기 때문에 실용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이왕에 짓는 거라면 심미적 독특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건축물을 부지의 어디에 앉히고 방향을 어떻게 틀고 모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비용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건축주는 가능하면 싼값에 실용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얻고 싶어 할 것이고, 건축가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실용성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측면에서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유지하고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좀 있는 사람들의 예에 지나지 않고, 보통의 경우, 이른바 집 장사라고 불리는 일반 건축 시공업자가 집을 시공하는 경우, 건축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건축주는 돈 내는 을이 되어 건축이 끝나면 하자와 화병과 후유증만 넘쳐난다고 한다. 집을 지으면서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책에서 수없이 보고 들었다. 건축에 대한 오해와 이해는 건축주나 건축가 모두가 함께 풀어 나가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원하는 가심비는 고사하고 가성비를 얻을 수 있는 방법도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다.

 

더욱이 생태주의 공동체를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고려해야 할 일은 더 많다. 자연을 최소한으로 건드리는 일, 기존의 이웃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 친환경적인 건축자재를 사용하는 일, 작업 과정에서 건축주와 시공사, 그리고 건축노동자 사이의 노무 관계를 인간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 등이 다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공사는 토목설계와 시공, 건축시공의 전 과정을 마스터플래너인 오우근, 함은주 건축가의 감독과 감리 과정을 거쳐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03년에 완성한 넘치는 교회의 사례에서 기존의 건물과 도로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회 부지와 건물을 기존의 마을과 나누고 공유했던 경험을 이 마을 건축에 풀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미 관훈동 쌈지마켓에서, 서울문화재단에서, 헤이리 딸기가 좋아 2의 건축 현장에서 설계도안을 그리고 설계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현장에서의 협업을 이루어낸 경험이 있다.

 

그들의 고백이다.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도면을 들고 현장으로 간다. 각 공정의 기술자들은 오랫동안 그 분야의 물질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 재료가 갖는 물성에 누구보다 익숙할 뿐만 아니라 오랜 작업의 경험은 현장 여건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들과 함께 2차 디자인을 하게 된다. 재료와 형태에 대한 그에 수반되는 적절한 치수만을 의논하여 결정한 후 기술자가 알아서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한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기술자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상당한 경우, 의외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는 몸으로 지어가는 그들에 의해서이기도 하고 책상 위에서 작업한 1차 디자인에서는 미처 발견되지 않던 현장 상황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아직 추상의 수준에 있는 설계도가 현장의 기술자와 건축노동자의 손과 몸에 의해서 변형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신뢰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화가의 화폭이나 시인의 문장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과정에서, 노동이 이루어지는 작업 현장에서 아름다움은 더욱 진실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구태여 개념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현장(scene)의 아름다움은 즉시에 즉석에서 생산되고 구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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