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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눌노리 27
지금까지 이야기는 상상의 세계였다면 지금부터는 실제 편이다. 상상의 세계는 ‘무엇’이나 ‘어떻게’가 내(우리) 마음대로이고, 돈이 들어가지 않고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꿈의 세계이기 때문에 나 또는 우리가 중심이고, 달콤하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건축의 실제 세계는 현실에 가로막히고 돈에 의해서 제한되며, 나 또는 우리가 아니라 사업자 또는 정부라는 파트너에 의해서 규제된다.
크게 보면 건축에는 설계와 시공이 있다. 설계가 꿈의 세계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거라면 시공은 설계를 현실 세계에 가시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을 건축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것이 토목 작업이다. 한 마디로 땅 위에 집을 짓기 전에 땅 밑으로 상하수, 빗물, 전기통신선 등을 파고 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토목설계와 토목시공을 한다. 토목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측량이다.
사람들이 집을 짓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건축주가 건축시공업자에게 '평당 얼마'로 계약해서 공사를 통으로 맡기는 방식이 가장 흔한 경우인데 이를 도급이라 한다. 건축주로서는 신경 쓸 일이 없는 가장 편리한 방법일 수 있으나 같은 집을 지을 경우 비용이 가장 많이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시공방식에서 수주와 하청, 재하청의 시공방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건축주가 직영하는 방식인데 건축주가 공정별 분야별로 사람들을 직접 고용하고 건축 과정을 관리한다. 같은 집을 지을 경우 가장 싸게 지을 수 있고 도급에 비해 대략 20~30% 정도 비용이 절감될 수 있지만 집을 짓는 과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세 번째로는 직영과 도급의 중간 형태인 C/M(Construct Manager)가 있다. 건축주가 현장 소장을 직접 고용해서 그를 통해 현장관리, 공정관리, 사람관리를 하는 방법이다. 현장 소장을 고용해야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도급에 비해 건축주가 선택할 수 있는 자재의 범위가 늘어나면서 집에 대한 만족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건축업자에게 맡겨서 진행하는 경우 건축업자가, 토목설계업자, 토목 시공업자 등을 지정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일을 진행한 사업 파트너일 가능성이 높아서 여기서부터 건축주와 건축업자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주는 가능하면 적은 돈으로 자기가 만족할만한 집을 지으려 할 것이고, 건축주는 계약한 금액 내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야 하므로 가장 싼 설계로 가장 비용이 적게 들어갈 방식으로, 가장 싼 자재를 사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나 경험담을 들으면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특히 외지인이 자기 연고가 없는 곳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경우, 땅을 중개한 부동산업자가 개발업자일 경우가 많아서 건축을 부동산업자에게 맡겼을 경우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양평에서 집을 세 번 지어 본 경험을 쓴 <착한 건축주는 호구다>에서 보면 본인이 건축업자에게 당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나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집 축대를 쌓아주기도 하고, 같은 업자가 개발하는 앞 땅을 다져 주기도 하는 이야기 등이 실감 나게 나온다.
건축주가 직영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비용으로 자기가 원하는 집을 짓는 방법이지만, 건축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그림의 떡’, 언감생심일 뿐이다. 토목시공을 하면서 토목업자와의 갈등도 많이 일어나지만, 토목이 먼지와 소음을 발생시키는 작업이다 보니, 이웃과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과 민원도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원치 않는 공사 기간의 연장도 일어날 수 있다. 사기나 손해를 보지 않는 일, 이웃을 잘 이해시키는 일 등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현장에서는 토목공사가 끝난 땅을 사라는 말도 있다.
토목공사를 시작하면 이제 건축이라는 현실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