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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 찾아 삼만 리(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8. 8. 09:06

어쩌다 눌노리 30

 

약간의 비용을 출혈해서라도 업자를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공사의 주도권을 업자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 터무니없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생각, 그럼으로써 돈 내고 호구 소리 듣는 멍청한 갑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말이 통하는 업자, 공사 과정을 우리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업자를 찾아 일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착한 호구가 되지 않기는 정말 어려웠다. 왜냐고? 적당한 업자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규모를 감당하고 공사할 수 있는 업자를 지역에서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우리가 배제시키기로 한 업자는 이러한 사정을 뻔히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우리가 어서 백기 투항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성토는 따로 하지 않고 토목작업과 병행하기로 하고 토목업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우리 주민들이 각자 아는 토목업자를 찾아보고 공사에 견적을 내도록 권면하기로 했다. 회사나 기관에서 하는 정식 입찰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주민들이 추천한 업체 세 곳과 우리가 배제하기로 한 업체 한 곳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마을의 마스터플랜을 구성한 건축사가 참여 희망업체를 현장에 초청해서 토목설계의 개요와 공사의 강조점과 특이사항 등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고, 참여업체에 토목 설계도를 이메일로 발송했으니 2주일 후까지 견적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토목설계의 최대의 문제점은 역구배 문제였다. 우리 부지가 약간의 경사가 있는데 시청의 요구로 아래쪽이 아니라 부지 위쪽으로 오수관을 빼내게 됨으로써 역구배가 발생하였고, 참여업체는 이것의 문제점 지적과 시정 요구가 있었다. 우리도 이런 설계를 납득하지 못하였지만, 시청의 요구라는 토목설계업자의 설명에 그것을 전제조건으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과는 우리가 배제시키려는 업체 말고는 아무도 견적을 내지 않았다. 역구배로 했을 경우의 비용 문제와 낙찰 가능성을 따져서 견적을 내지 않겠다는 업체도 있었고, 견적을 내려고 여러 번 문의했지만 견적을 내지 못한 업체도 있었다. 견적을 내는 직원이 설계도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알게 된 하나의 사실은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이 도면을 읽고 견적을 낼만한 직원을 하나 두지 못하고 견적도 하청을 주어 받아서 입찰에 응한다는 사실이었다. 건설사나 토목회사의 하청, 재하청 구조는 지역 단위의 이런 조그만 업체에도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이러니 자존심을 죽이고 이전 업체에게 그냥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다시 한번 입찰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다시 다른 아는 업체를 수배했고 세 곳의 업체에서 견적을 냈다. 견적 결과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도면을 읽지 못해 엉뚱한 견적을 내는 업체들이 또 나왔다. 시청 공무원과 협상해서 역구배를 해결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우리 건축사가 세 업자를 불러서 다시 설명하고 다시 견적을 받았다.

 

견적 금액, 회사 실적, 업무 추진의 신빙성, 회사에 대한 신뢰도와 평판, 업체가 현재 시공하는 현장 방문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한 업체를 찾아 계약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헤이리 등에서 여러 채의 큰 건물을 지었고, 건축주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은 업체였다. 역구배 문제도 쉽게 해결을 보아 아래쪽으로 오수관의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역구배 문제를 보면서 아무래도 일을 어렵게 함으로써 입찰을 어렵게 하여 다른 업체의 참여를 막으려는 설계업체와 우리가 배제하려던 업체의 유착관계를 의심할 수 있었다.

 

성토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면 벌써 토목공사가 끝났을 시점에 토목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기념으로 토목 착공 전,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안전기원제(고사)를 성대하게 치렀으나 그다음 날부터 무정하게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8월 중순이 되기까지 그렇게 심하게 비가 내렸다. 공기는 다시 보름가량 다시 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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