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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8. 10. 09:32

어쩌다 눌노리 32

 

가난한 어린 시절에 관심과 대화의 주제는 밥이었다. 밥이 되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고, 공부도 밥이 되는 공부여야 했고, 밥이 되지 못하는 공부 따위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탈가난, 탈농촌이 우리 부모의 근대화 목표였다. 당시의 조국 근대화의 의미도 그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할 때 그 기준은 밥이나 떡이 나오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어서 밥이나 떡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못난 아들의 선택은 늘 밥이나 떡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보기에 허망한 일이었다. 돈도 안 되는 낙서 같은 시 나부랭이나 끄적이고, 착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눈길이 시골집까지 뻗치게 하고, 선생이 되어서도 교육운동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언제 잘릴지 늘 걱정하게 했으며, 남 자식들은 아파트도 잘 사고 잘 늘리고 잘 먹고 잘 사는데 남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위인이 집 한 칸 없이 시골로만 싸돌아다니는 곳이 밥벌이를 제1로 가르친 부모의 가르침을 일부러 지키지 않고 거꾸로 사는 청개구리 같은 삶이었던 것이다. 대학 다닐 때 무슨 문학상을 받았다 하니 그게 밥 먹고 사는 일이 되냐 하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첫 반응이었다.

 

밥이나 떡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나이 들어 퇴직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돈이 좀 있으면 돈이 새끼를 칠 수 있는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살 것이지 집을 짓자마자 재산 가치가 하락할 것이 분명한 최전방 지역에서의 생태 마을 만들기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신다면 한 번 더 깨어났다 돌아가실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꿈꾸고 그리는 마을의 상은 통상의 경제적 관념 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것이다. 일단 우리 마을은 에너지 자립 마을을 계획하고 있다. 한전의 전기는 들어오지만 일단 전기는 화석 연료에 의한 전기가 아니라 태양광을 모든 가구가 설치할 예정이고, 마을센터(주택이 아닌 것은 지원이 안됨)와 한 가구를 제외하고서는 1313 가구가 지열을 이용하여 냉난방을 할 예정이다. 기후대응을 위해서 냉방은 처음부터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어차피 지열을 이용한 난방을 한다면 냉방을 하는 것이 이중투자가 아니니 지열을 이용하여 냉방을 하기로 했고,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던 가구들도 지열 냉방으로 바꾸기로 했다. 문제는 효율성과 가성비였고 이를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10여 년 전에 집을 지어 지열 난방을 했던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열을 끌어올리고 돌리는 전기요금이 만만치 않아 자기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다고 한다. 태양광으로 전기로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전기요금이 그렇게 많이 나오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으로 주춤하고 있는데 최근에 지열과 코어클을 설치한 우리 주민의 지인 이야기를 들으니, 전기 요금이 그 정도는 아니고 기름 난방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올해 집을 지을 4 가구의 주민들이 양평의 그 지인 집을 견학 방문하여 지열과 코어클 이용사례를 설명 듣고 직접 설비들을 확인해 보았다. 모두 시설과 효율과 전기요금에 대해 만족하였다. 알고 보니 결국 집의 단열이 문제였다. 서울시도 박 시장 재직 시에는 그린리모델링이라고 하여 단열을 잡기 위해 구가옥의 경우 가구당 단열비 50%를 지원하는 그린리모델링을 추진한 바 있었으나 시장이 바뀌고 모두 스톱되었다. 오래된 구가옥의 경우 벽과 창호, 지붕을 통해 빠져 나가는 에너지의 소모량이 50% 이상이 되었던 것이니 단열을 철저히 하는 신축 주택의 경우 지열난방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50% 정부 지원을 받아도 1천만 원의 설치비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10년 이상 사용해야 투자비를 건질 수 있다는 계산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을 줄여 기후행동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지열과 실내 냉난방은 코어클을 설치하기로 정하고 업자를 불러 계약하였다. 참고로 말하면 코어클은 여름과 겨울 상관없이 일정한 지열 온도를 이용하여 공기를 식히고 덥히는 대류 냉난방과 바닥에 냉기와 온기를 돌리는 복사냉난방을 갖춘 시스템을 말한다.

 

냉난방을 투자비가 많이 드는 지열로 확정하면서 당장의 목구멍에서 밥도 떡도 되지 않고, 오히려 많은 돈을 더 들이는 또 하나의 청개구리의 행동을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전에 시현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화석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바꿔 타고 삶의 대전환을 이루는 것이 당장의 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밥을 위하고 목숨을 길게 이어 나가는 운동임을 알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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