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쩌다 눌노리 39
건축 시공 계약에 따라 집 짓는 분들이 공사하는 기간 동안 묵을 방을 구해야 했다. 우리 단체가 관리하는 모 출판사의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출판사 쪽에서 공익목적에 맞지 않다고 불가 통보를 해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선 마을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민박집을 찾아가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물로 나와 있는 곳이다. 파평산 아래 펜션이 있어 찾아갔다. 요즘에 영업이 될까 해서 물었더니 주말에는 방이 없을 정도라 장기투숙은 받지 않는단다. 인터넷을 뒤져 몇 군데 전화해 보니 모두가 장기 투숙은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다. 저녁시간도 되어 건축 현장 부근의 국숫집을 찾아갔다. 허기도 때울 겸 동네 소식도 들어볼 요량이었다. 전에 다른 일로 한 번 찾아온 집으로 여사장님이 자못 쾌활하시던 분이었다. 잔치국수 맛이 날림이 아니고 진한 맛이 났다. 뜨내기를 위한 장사가 아닌 것이다.
사장님, 국수가 참 맛있네요.
멸치로 진한 맛을 냈어요. 어디 가서 국수를 먹어보니 멸치 흔적도 안 나더라고요.
아니 요새 어디 식당을 가도 김치가 잘 안 나오는데 국수에 김치를 주시네요. 맛있네요.
이거 금치예요. 시장에서 한 망에 33만 원 할 때 담은 거예요.
저기 김치찌개 오천 원이라고 쓰여 있는데 너무 싸게 받는 거 아닌가요?
돼지고기값이 비싸 이제 김치찌개는 안 해요.
여기 주 메뉴가 뭐예요. 치킨도 있네요.
통닭이죠. 맥주 하고요
이 시골에서 누가 시켜요.
동네 사람들이죠.
사장님도 저기 교회에 나가세요?
아니오. 에이 저 사람들 맨날 싸우기나 하고 저기 몇 차례나 갈라지고 나갔어요.
왜요?
모르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진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양심 지키고 살면 되잖아요?
뭐 그렇지요.
그런데 사장님 참 고우세요. 그 연세에 잔주름 하나 없으시네요?(아내)
곱다는 말에 여자 사장님 이른바 '라떼'의 이야기를 풀어내신다(이때부터 사장님 눈빛은 빛나기 시작하며 손과 몸동작까지). 무슨 파마(사실 사장님이 정확히 표현한 그 시절 유명한 파마가 있었던 듯한데 잘 못 알아들음)하고 청바지 쫙~ 빼입고 립스틱 바르고 오토바이 타고 한 껌 씹던 시절 한 미모 하셨던 얘기부터 70년대 초에 미군 부대가 빠져나가기 전까지 이 동네의 번창했던 이야기며, 하루에 생맥주 두 드럼씩 팔았던(그 시절 생맥주 기기를 보여주며) 얘기까지. 나도 저 위에 집 짓는 사람이라는 신분을 공개하며 동네에 빈 집이 있느냐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이제야 꺼낸다. 여자 사장님 왈, 이쪽 집은 83세, 저쪽 저 집은 94세, 하며 동네 집들의 주거민들을 일일이 이야기하며 그런 시설도 없거니와 그런 방과 집들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동네에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얼마 전까지 중국인인가 베트남인인가 노동자들이 살다 간 집이 있는데, 그 집주인이 연로하셔서 방을 치워줄 힘이 없다는 말도 함께.
그런데 저 긴 땅에서 뭘 판다면서요?
긴 땅요? (공유건물 부지를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고) 아, 거기는 마을센터인데요. 앞으로 이 동네에서 나올 농산물을 가공해서 유통도 하고요.
15 가구라면서요.? 여기 동네는 죄다 나이 든 노인들뿐이고 젊은이가 없는데 뭘 판다고하니 말이에요.
네~ 이 동네에서 나오는 지역 농산물을 팔수도 있는 곳이에요.
이 동네 농산물은 다 군납하는데요?
그래요? 어떻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이 마을 분들과 함께 잘 살 궁리를 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저 건물 부지가 높아서 앞에 집 사람이 불평을 많이 해요.
네. 민원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어요.
동네 분들이 말은 안 해도 이것저것 알 건 다 알고 계신 듯하다. 농사지으랴, 장사하랴, 동네 골목에서 꽃 심고 가꾸랴 참 바지런하신 동네 분을 만났다. 자신이 심은 골목 담벼락 쪽의 분꽃을 보았느냐고도 한다. 작은 동네인데 교회도 있고, 절도 있고, 왕국회관도 있었다. 식당도 있었고 카페도 있었다. 파산서원 너머에는 어떤 신학교도 있었다. 마을길에는 요새는 보기 어려운 청초한 분꽃이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