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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눌노리 51
설계도면은 우리 부부와 건축사 부부 두 분의 미팅 과정에서 확정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설계 계약도 체결했다. 사실 평생 살면서 이렇게 거액을 주고 그림(?)을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옛날 금강산 관광 갔을 때 북한 작가의 그림을 헐값에 산 적이 있으나, 돈 주고 그림을 산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유명 작가의 그림이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거나 그림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는 젊은 사람들이 투자로서 그림 구매를 한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으나 순수하게 소장을 목표로 그림을 사는 일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그림 값이 형성되는 과정도 잘 모르고 그림이 팔리는 과정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화가들에게 그림 한 점 달라 든가, 그림 하나 주고 새로 그리라는 말 힘들지 않게 말하곤 한다. 예술가의 창작의 고뇌는 개뿔! 밤잠 못 자고 작업하는 과정의 수고는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건축 설계도 마찬가지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필요한 행정적 절차로서의 그림 몇 장으로만 생각하지 일반적으로 설계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림 몇 장에 몇 천만 원이라니! 집 짓는데 몇 천만 원씩 주고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얘기를 들으니 개인 건축의 경우, 건축사에게 정당하게 설계를 의뢰하고, 즉 설계비를 지불하고 집을 짓는 경우는 10%도 안 된다고 한다. 우리 마을에 함께 들어갈 사람 중에서도 건축사에게 설계도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프로토타입은 일반 허가방에서의 도면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도면만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집은 이용하면 건축시공업자의 경험과 머릿속 그림대로 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집이 그 집이고 그 집이 이 집이 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부인의 복사 논문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지만 베끼기와 표절은 우리 생활에 일상화되어 있다. 좀 깊게 생각하면 창작과 창조의 기능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있고, 지적 재산권(IP)에 대한 사회 저변의 인식은 높지 않다. 속보다는 겉을 중시한다. 지어지는 집에 대해서는 와!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데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상품에 대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열지만 지적 작업에 대해서는 값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남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내가, 논문을 쓰고 학문을 한다는 나의 의식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다.
건축설계 미팅을 하면서, 함께 앉아 도면을 완성해 가면서, 설계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건축사에게 지불하는 설계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집도 사람이 짓는 것이며 건축사와 건축주의 인간적 이해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설계도가 그림 몇 장이 아니라 상세도면(시방서)은 한 권의 책이며, 이 속에서 공정의 세세한 부분이 제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공업자는 시공과정에서 설계사와 수정 등의 문제를 상의하겠지만, 이 도면에서 지시하는 대로 집을 지음으로써 건축주를 괴롭히는 끊임없는 추가 비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소형 건축에는 면제되는 감리도 건축사에게 맡겼다. 건축사, 시공업자, 건축주 3자 각자가 상세도면을 가지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