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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2(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9. 4. 08:48

어쩌다, 눌노리 57

 

물이 곧바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일도 계획한 대로 딱 딱 진행되지는 않는다. 계획대로 시간도, 사람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고 물자도 적시에 공급이 되지 않거니와, 어떤 방해 요인이 자주 끼어들게 된다. 계획은 합리화 모형을 추구하는데 실제는 이 정도면 되었지 하는 선에서 봉합하는 만족화 모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도 다행일 때가 많다. 버려진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아무거나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이 원만하게 잘 진행되지 않는 원인은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다. 마을 만들고 집 짓는 과정도 그렇다.

 

우선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가장 먼저 우리의 경험 부족을 들 수 있다. 집 짓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을을 만들고 집 짓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마을 조성과 건축의 전체 일정을 거시적으로 조망한 상태에서 파트별 또는 단계별 세부일정 흐름을 짜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 어려웠다.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건축사나 토목설계사의 지시 또는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자꾸 서로 얽히거나, 바른 지시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지시를 적기에 집행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성토하는 과정의 혼란을 통해서 우리는 심리적, 경제적, 시간적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한 바 있다. 그런 비슷한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우리가 한 개인이 아니라 15가구 대략 30여 명의 집합이라는 것도 의사결정과 집행을 느리게 하는 요인이었고, 일사불란한 행정 체계의 불비 또는 부재도 한몫을 했다. 결정, 번복, 재결정, 원점에서의 재논의하는 과정들이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고, 진행상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었고, 그것이 공기를 어떻게 늦춰가는지 잘 몰랐다. 흐름을 조정하는 것이 건축사의 일인지, 우리 건축주들의 일인지 불분명할 때가 많아서 건축주들이 해야 할 일을 건축사가 대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예 그게 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세금 내는 문제도 건축사에게 문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선 지중화 작업을 위해 부지 내 전신주 하나를 이설해야 했다. 그런데 이 일이 등기 이전이 늦어지면서 지체되었다. 부랴부랴 등기 이전을 마치고 전신주 이설을 해야 했는데 전신주가 있는 부지의 지주가 아니라, 건축사가 더 지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부지의 지주인양하고 한전을 방문하여 해결하였다. 전신주 이설이 예정된 날짜에 이뤄지지 않자 전선 지중화 작업팀들은 자기들의 스케줄이 꼬였다며 나름대로 합리적인 불만을 제기하였다. 행정 처리와 공사현장의 일 처리 연동 관계도 인식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행정이란 일의 흐름(flow)을 관리하는 일이다. 일의 전체 진행을 기획(planning)하고, 일의 선후관계를 배치하고 발생할 수 있는 방해 요소를 예방, 제거하면서 일의 목적이 성취되도록 조직을 짜고 사람을 배치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행정은 정치와 마찬가지로 큰 조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집단 안에서도 존재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이를 경영이라 하고 공조직에서는 행정이라 한다. 회사에서나 기관에서나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리면 병목 현상이 생기고 당연히 일은 지체되고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일의 분배 즉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리더는 일을 직접 담당하지 않더라도 일의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행과 막힘을 파악하여 바로바로 조치해야 한다. 하다못해 구멍가게도 경영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퇴출되는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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