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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눌노리 66
파평산 가을산색, 눌노리 가을 하늘색이 배경이 되면서 나무 골조는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목조 골조가 세워질 때마다 내 눈에는 마치 일하시는 분들이 가을나무 한 그루씩 심는 것 같았다. 세워진 나무 기둥 사이사이로 주변 숲의 나무가 들어오고,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다가 골조 위 지붕 없이 뚫린 공간으로 집안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일하는 사람과 자연과 집이 하나다.
집터를 파고 내려다보기만 했던 땅에 기초 공사를 마치고 매트 위에 세워지는 기둥들. 일하시는 분들이 점심을 드시러 간 틈을 타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기둥들 사이사이를 걸어본다. 뜬금없이 박약한 지식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콘크리트식 건축 박공지붕의 판테온 신전. 그리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 이름이 맞나? 또 뭐가 있지? 박약한 지식 속에 학습된 이름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건축사의 우리 마을 마스터플랜에서는 각 주택 외곽으로 열주들이 펼쳐지는데 마치 그것이 신전 외곽의 열주처럼 상상 속에 붕붕 떠다닌다.
신전의 어마무시한 기둥과 경량 목조의 기둥. 비교 불가한 것들이 잠시 대비된다. 환상처럼 쓰잘머리 없는 상상을 하면서 줄 세워진 나무들, 나무 향기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구체성이 결여된 비교의 늪에 빠지고 선의 미학에 취한다. 다른 현장의 시공 사진을 보면서 나무들의 선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현장 공간 안에서의 느낌은 그것 하고는 또 달랐다. 아름다움이라는 말 외에 무슨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토록 이 선들을 아름답게 느끼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때마침 기러기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간다. 그들이 하늘에 띄우는 편대의 선 역시 미학의 정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