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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눌노리 72
우리가 목재 골조 시공을 시작한 것은 11월 초순이었다. 가을이 뒷자락을 보여주는 시기였지만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맑고 높았다. 현장에 아침 일찍 가 보면 마을에 인접한 야트막한 동산 뒤로부터 기러기들이 떼 지어 마을 부지 위를 건너 날아가는 모습을 본다.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야트막한 동산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오르는 길은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낙엽이 떨어져 사람 허리만큼 쌓여 있다. 마치 시원(始原)의 숲 같다. 가장 높다 생각되는 곳에 이르러 저 멀리 논바닥을 보니 기러기들이 떼 지어 앉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는 남편과 함께 수백 마리 기러기들이 한나절 보내는 곳을 찾기 위해 작심하고 길을 나섰다. 앞으로 우리가 살 동네이기 때문에 고샅길 구석구석 살피며 넓게 펼쳐진 논바닥 앞에 다다랐지만 기러기를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여기서 보이는 저 끝의 논바닥인 것 같다. 오늘은 현장에서 이런저런 미팅이 있어서 더 이상 갈 수는 없었다. 다시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른 날 점심을 먹고 다시 기러기들을 찾으러 갔다. 차를 타고 조금 멀리 떨어진 논바닥 근처까지 가서 차를 세워놓고 있음 직한 길로 걸었다. 찾았다!! 수백 마리는 될 듯한 기러기들이 멀지만 새까맣게 보인다. 놀면서 수다를 떠는 건지 꽤나 소란하다. 너무 멀어 조금만 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질펀한 논둑길에 푹푹 빠지면서 몇 발 떼었는데 우리 가까이 두세 마리가 빙그르르 날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찰병 기러기였나 보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기러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시에 떠 올랐다. 우리도 순간 너무 놀랐지만 적(?)이 나타났다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은 기러기들의 본능적인 모습이었나 보다. 수백 마리가 일시에 소리까지 내며 떠오르는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지만 동시에 기러기의 평화를 깬 우리의 생각 없는 행동을 반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