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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눌노리 75
처음에 열흘 걸린다는 창호 제작은 차일피일 지연되더니, 정작 제작이 완료되고 나서는 창문을 달아줄 일꾼들의 일정이 잡히지 않아 다시 이틀이 늦어졌다. 물류 대란으로 뒤늦게 들어은 몰타르는 방통을 치고 곱고 잔잔하게 방바닥에서 수평을 잡고 누워 있고, 스카이텍으로 집의 목조 뼈대를 두르고 방통의 몰타르의 양생을 기다리는 집은 창문을 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제작 과정과는 달리 창호공사는 시작되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스카이텍을 자르고 개구부를 열어 미리 제작된 창호를 맞춰 끼우고 틀과 벽 사이의 틈을 우레탄 폼으로 쏘아 기밀성을 확보하고 창틀의 네 면을 따라 방수테이프를 부쳐 혹시 모를 누수 또는 물의 침투를 방지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창문이 제 자리에 자리를 잡자 공사 중인 건축물이 바야흐로 '집'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현대 건축에서 창호의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건축물의 특징과 미관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창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건축물에서 창호의 비중은 낮았다. 창보다는 호戶, 즉 출입문의 비중이 높았다. 열의 보존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창을 만들지 않거나 창을 작게 만들어야 했다. 물론 궁궐이나 가람, 반가의 가옥에서는 멋을 부린 창호들이 많았지만, 서민들이 주로 사는 전통 초가의 창호는 문 하나 봉창 하나 정도, 그리고 안방과 윗방을 연결해주는 출입문(호戶) 정도가 있었다. 그래서 창호라고 해야 창호지가 연상될 정도로 문에 종이를 바르거나 잘해야 문살을 정교하게 하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리가 보급되면서 건물의 미관을 좌우하는 창호의 비중은 과거와는 달리 크게 늘었다. 유리가 창호의 핵심이 된 것이다. 심지어 유리로 벽을 구성하는 건축물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은 늘 비용을 요구하는 법이다. 창이 많아질수록, 창의 크기가 커질수록 창이 요구하는 돈의 액수가 커지고 기밀성은 약해진다. 기밀성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창의 틈으로 빠져나가는 돈(냉난방비)의 액수도 커지게 된다.
따라서 건축주로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까지는 아닐지라도, 실용이냐 아름다움이냐라는 문제 앞에서, 그 비율의 적절한 조화 앞에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 세상에서 창(windows)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지만, 집에서 창은 공기와 빛과 열을 들이기도 하고 막기도 하는 출입구이다.
한자 창(窓)이 구멍 혈과 사사로울 사와 마음 심자로 구성되어 있듯이, 집안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소통 창구이면서 사적인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이 집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