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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의 함정(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10. 20. 09:48

어쩌다, 눌노리 100

 

마을을 조성하고 집을 지으면서 참 많이도 계약서를 썼다. 여기다 구두로 맺는 계약까지 포함하면 정말 어마무시하다.

 

우선 마을 조성과 관련한 계약은 크게 마을마스터플랜, 마을토목공사, 마을공유건물 건축공사, 전선 지중화 작업공사, 빗물사용계획과 수로공사 계획 등이다. 마을마스터플랜 계약에는 토지분할 및 등기, 형질변경 인허가, 부지 토목설계, 마을공유건물(마을센터) 설계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고, 마을토목공사에는 마을진입로, 마을내부도로, 필지별 경계 확보와 경계 쌓기, 오수, 우수관, 전기, 상하수도 등이 들어가 있다. 공유건물 건축공사에는 설계도에 따른 건물 공사 및 부속 공사 등에 대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집을 지으면서 우리(개인)가 맺는 계약의 내용은 건축설계 계약, 건축시공 계약, 태양광, 지열, 빗물저금통, 지열냉난방시설(코어클) 계약 등이었고, 현장소장이 발주하는 대부분의 하도급 계약은 구두 계약이었다.

 

이러한 대부분의 계약은 표준계약서에 따른 것이고, 공사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계약서를 들여다볼 일이 없다. 다시 말해 공사가 끝날 때까지 계약서를 꺼내 보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사 도중에 계약서를 꺼내 자구 하나씩 살펴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결국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고,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계약서상의 갑을 관계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갑이 권리자고 을이 의무 수행자이지만, 실제 문제가 발생하면 갑을관계가 뒤집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사에서 갑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지만 공사에 문외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을의 경우 그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어서 문제가 발생하여 시시비비를 따질 때는 갑을의 힘의 관계가 뒤바뀐다. 갑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절대적으로.

 

막말로 계약할 당시에 갑은 공사 도중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전혀 알지 못하므로 계약서 상에 어떤 문제를 특수 조항에 넣을지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날인하기 전에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보니 아주 불리한 내용(을의 의무사항은 없고 갑의 의무사항만 기록되는 경우)이나 금액 계산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사 전에 건축주는 반드시 계약서 내용을 꼼꼼하게 읽고 의문사항은 반드시 따지고 질문한 후에 작성해야 한다.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초안을 미리 받아 꼼꼼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주변이 관련 분야에 전문가가 있다면 자문을 구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 더 주의할 점은 을의 책무를 점검하기 전에 갑으로서의 의무와 권한행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서 작성하고 공사를 시작하면서 시공업자가 의례히 알아서 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서로에게 패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계약자 갑이 개인 혹은 단체나 다수일 경우는 대표자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모두가 주인이지만 아무도 주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 더 주의해야 한다. 말 그대로 자선이 아니라 계약이니 내가 할 것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해야 한다. 잘못하면 돈만 내는 호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계약서의 말은 미끈하고 화려하나 곳곳에 함정이 많다. 그것도 너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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