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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亂이 어지러움이라면 전쟁만이 난리가 아니다. 실속없이 분주한 일에 치이는 것도 난리고, 선택적 기억을 통한 말의 오해와 왜곡과 난해도 난리다(말과 글을 일로 하고 살아온 나같은 사람의 숙명이여!).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위해서 정치하는 것 같은 얼치기 정치인들의 심오한 행위는 더 큰 난리다.
이럴 때는 우선 입을 꼭 다물고 눈을 부릅뜨고 어지러움을 지켜보며 잠시 피하는 것, 즉 피란避亂이 상책이다. 자리는 반드시 십승지가 아니어도 좋겠다.
이삿짐을 옮기고 며칠동안 받아야 할 물건들을 기다렸다가 받아놓고 오늘, 새벽에 도적처럼 도망하여 속초 아바이마을 바닷가 <카페 청호동>에 앉아 멍을 때리는 중에 유기택 시인의 시를 읽는다. 내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다.
<슬픔의 독법>
사는 일의 반절은 기쁨
그 남은 일의 또 절반은 슬픔
슬픔의 독법은 등을 읽는 것
가끔은 등을 읽자
기쁨으로 가려진
우리를 위해서라고 해도 좋다
얼른 감춘 것들의 대개는
등 뒤 엉성히 모여 지내는 편
누구를 안아주는 것도
등에 숨긴 걸 어루만지는 일
가슴으로 안아준다는 말은
반만 맞아
보면 종종 안겨 오는 너도
너의 슬픔을 기대 보는 것
구부린 등을 쓸어주다 보면
기우는 슬픔의 무게를 안다
등은 그 모든 걸 다, 어떻게
기억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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