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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2-3년씩 5곳 정도를 옮겨다니는 유랑의 삶을 계획했었고, 그 후보지 중의 하나가 속초였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동해가 있고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설악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속초 여행은 심란을 피하고 온전하게 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많이 자고 좋은 것을 먹고 바다멍에 빠져 한 군데 오래 머물렀다.
흐리고 비 오고 초겨울처럼 춥고 바람 불던 날씨도 바뀌어 눈 떠보니 오늘 아침은 맑고 조용하다. 바다도 평안해 보인다. 설악에게는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건넸을 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유감>
올 때마다 높아지는 속초의 모습에 실망한다.해운대처럼 높이 경쟁하는 건물들. 바다 뷰를 부추겨 서울을 불러들이는 자본의 탐욕과 이에 편승하려는 행정과 일부 주민의 욕심의 합작이겠지만, 남 따라가기에서 벗어나서 제 본모습을 지켜가는 것이 참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바다와 높은 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도시가 속초 말고 세계에서 또 어디 있을까. 몇 년 지나면 바다 쪽에서 설악이 보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영금정에서
속초 끄트머리 동명항 큰 바위에
우뚝 영금정靈琴亭이 홀로 서 있다
발 밑에서 이는 바닷가 아스라한 파도소리가
신령한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낸다고 하는 곳
인간의 말은 작은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말뜻을 잃고 오해의 외투를 걸치고 돌아오는데
저 파도의 말씀은 거친 바람의 원망이 아니라
어찌 가슴을 파고드는 신묘한 소리로 돌아오는가
아픔은 슬픔을 낳고 불신은 미움을 키우고
미움이 커지면 입 안의 혀를 벼리게 되거늘
정녕 제 혀를 베어야 할 인간의 말은 때로는
칼이 되어 이웃을 베고 뒤를 치기도 하는데
영금정 거문고 소리는 동해 바다 관세음의 공력인가
마음을 비우고 지혜를 비는 보살행의 간절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