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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노리 산책/생사(전종호)

요술공주 셀리 2023. 11. 3. 09:22

모내기를 위해서 논물을 채우고 있다. 풀이 점령한 밭은 이제 로타리 치는 농부들에 의해서 정리 중이나 산은 이미 녹음에 들었다. 우리 마을의 빈 땅은 황무荒蕪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곧 풀들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빛 공해가 없어서 밤마다 어두움이 가득 차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고 삶이 계속되지만 한 편으로는 크고 작은 죽음들도 계속된다. 살고 죽는 것, 이것이 삶이 아닌가.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는 박새 한 마리가 찾아온다.

 

 

생사

 

나 살려고 시골에 집 짓고 이사 왔더니

같이 살자 말벌이 집머리맡에 집을 지었다

여기가 살만한 집터인가 말벌이 알아주네

저나 내나 한평생 한 번뿐인 목숨인데

누구라도 좋은 데서 살아야지 생각하면서

길가 질경이 몇 포기 돌틈에 옮겨 심는 아침

주인 영감이 돌보지 않고 놓아 둔 사이에

죽을 줄 살 줄 모르고 먹이를 찾아다니다

옆집 강아지가 지나가는 차에 치였다

길 가운데 죽은 새끼 옆에서 어쩔 줄 몰라

어미 개는 사람처럼 부복해 앉아 있는데

서러워라 사는 게 이럴 줄 진작 알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누구나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걸

강아지를 땅에 묻어주면서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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