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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를 낸 제부가 앞장을 선다. 처형이 왔다고 머리를 싸매고 짠 프로그램이라니 오늘도 기대 가득이다. 하나, 둘. 셋, 넷 합창은 없어도 키 순서대로 나래비를 서서 걷고 있는 우리는 마치 소풍 가는 유치원생 같다. '전산교'를 지나가는데 오른쪽이 마카오라고 한다. 멀리 '마카오 타워'가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마카오가 옆동네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다리 건너에 위치한 '환위청 버스 종점'에서 2층 버스를 탔다. 2층 맨 앞자리. 주하이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다. 깨끗하고 잘 정비된 도시다.
해변을 끼고 요리조리 곡선을 이룬 '연인의 거리'를 걷는데 바람이 차다. 바닷바람을 안으며 찾은 진주를 들고 있는 어녀상. 어녀상을 관람하고 우린 다시 2층 bus에 올랐다. 조개음악당에서 하차를 했지만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한다. 치밀하게 준비한 제부가 맛집 마카오 식당에 우리를 안내했다. 뷔페식 식당이었지만 고기와 생선, 새우 등 세 접시를 시켰는데 대 성공. 바닷바람으로 언 몸을 맛있는 점심으로 회복한 우리가 찾아간 곳은 조개 음악당. 바다에 접한 음악당이 조개모양이라니 찰떡궁합이다. 두 개의 조개모양 조형물은 곡선. 안의 내용물은 직선. 상반된 곡선과 직선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주해의 랜드마크라 하기에 충분하다.
커피 한 잔으로 여유까지 챙기고 우린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제부가 특별히 선택한 장소, 주해 박물관이다. 이 건물도 초대형. 3층 건물인데도 크기가 상당하다. 관광 bus에서 내린 관광객과 체험 학습 중인 중학교 학생들로 실내가 시끌벅적.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있고 움직임이 많은 남학생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이든 발이든 움직임이 많은데, 사춘기 청소년의 장난기는 어느 나라든 다 똑같은 것 같다.
주하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듯. 1900년대 초의 흑백사진부터 시작하여 발전한 현대의 모습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 선사시대부터 주로 유물 위주로 전시해 놓은 우리나라의 박물관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중국 영화에서 흔히 접한 도자기류와 공예품은 낯이 익어 흥미로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근대의 자동차 모양을 한 소방차였다.
아침부터 만보도 넘게 걸었다. 만보기에 숫자를 본 순간, 갑자기 멀려 오는 피곤함. 해변공원을 찍고 백년동 공원에 이어, 젊음의 거리 '부화리'에 가서 훠궈를 먹기로 한 일정을 내가 확 틀어버렸다. 칭얼 대는 어린애처럼 "집에 가자"했다. 주하이 도착 사흘째. 천천히 움직이자. 인디언의 말도 있지 않은가. 몸만 빨리 가면 뭘 하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처형을 위해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함께해 준 제부가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