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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현장)미술의 진화 2(이응우)

요술공주 셀리 2024. 1. 21. 09:46

 

필연과 우연

 

야투의 창립은 새로운 미술을 희구하는 선택이었다. 1980년 개최된 금강현대미술제의 후속 전시로 일부작가들에 의해 ‘오오동인전(五悟同人展)’이 개최되었으며, 이 전시가 야투를 직접적으로 견인한 마중물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의 참가자 중 한 사람인 허진권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당초 이 전시는 금강현대미술제에 앞서 기획되었으나 임동식작가의 요청에 의해 금강현대미술제 이후로 미루어 개최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미술사에서 현대미술제1970년대 한국미술계를 강타한 지역미술운동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부밍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이 대학을 진학할 무렵인 1970년대는 전국각지에 미술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신설되었으며 4년 후 졸업생이 쏟아져 나왔으나 그 많은 미술인구를 수용할 사회적 기반이 없었다. 당시 예술인의 등용문은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이 유일했다. 그나마 지방대학 졸업생의 등단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대구 부산 등지의 지역 거점도시에서 현대미술제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대전을 비롯한 충청지역의 현대미술제는 다른 지역보다 한발 늦은 1980년에 뜻밖에도 공주의 금강백사장에서 개최되었다. 그 해 나는 군복을 입고 금강과 백사장 그리고 금강철교 난간 등 광범위하게 설치된 작품들을 보며 충청지역의 현대미술을 단편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지금도 백사장 한복판을 차지하고 서 있던 조성모의 의자왕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의자와 젊은 예술가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한 고승현의 ‘4km를 향한 작업등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어쩌면 궁여지책일 수 있으나 을 행사장소로 선택한 것은 당시 이 행사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행사에 참가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인위적 오브제를 사용했음에도 유독 현장성이 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자연현장의 영향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조우했으며, 일부 공주에 거주하는 작가들은 그해 가을 공주문화원에서 ‘오오동인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에 참가했던 작가들(고승현, 유동조, 임동식, 지석철, 허진권)은 새로운 미술에 대한 토론을 통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미술의 연구를 위해 모종의 단체를 구상하고 수시로 만나 기본계획(임동식)과 작가구성(고승현)에 착수하여 다음 해 여름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고승현 “4km를 향한 작업금강현대미술제 1980

 

 

조성모 의자금강현대미술제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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