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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뭉쳐서 산다

요술공주 셀리 2024. 1. 30. 13:35

"언니, 잠깐 내려갈게요."
윗집 동생은 늘 경쾌한 소프라노 목소리다. 얼굴 본 지 5일 만이다. 금세 내려온 동생은 언제 보아도 반갑기만 하다. 손에는 부탁한 쌀국수 한 박스가 들려있다. 언제부턴가 서로 편안해진 우리는 뭘 사다 달라, 좀 빌려줘라 하는 말도 쉽게 소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윗집 동생은 못보던 바지를 입고 왔다. 편해 보이는 새 바지가 유난히 관심이 가 어디서 샀냐, 얼마냐, 괜찮냐 등을 물어보다가 급기야 동생이 인터넷으로 내 것도 주문해 주기로 했다.
2시의 데이트. 옥이가 내려오면 우린 윗집 언니네와 산책을 한다. 그런데, 언니도 옥이 바지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우리는 '기모가 들어있는 편한 새 바지'를 세트로 입고 삼총사처럼 산으로, 강으로 산책을 다니고 있다.

"언니, 오랜만에 수제비 해 먹자."
옥이의 제안이다. 수제비 반죽은 내 담당이다. 그래서 오늘 또 밀가루 풀풀 날리며 반죽을 해서 윗집으로 갔다. 육수 담당은 언니의 몫. 팔팔 끓고 있는 구수한 멸치육수에 얇게 뜬 수제비를 퐁당퐁당 넣고 한소끔 끓인 수제비는? 우왕, 대박맛이다. 7인분의 수제비를 5명이 먹었다. 한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먹은 지 일주일 만이다. 지난주엔 언니의 초대로 능이백숙을 이 자리에서 먹었고, 수육과 양장피, 피자와 닭볶음탕 등 수많은 음식을 함께 했다. 자주 만나서 함께 먹으니 우린 식구(食口), 맞다. 우린 어느새 한 식구. 언니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고, 인0 씨는 튀긴요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사장님은 특히 칼국수를 좋아한다는 것쯤은 이미 다 서로 아는 내용. 
"맛있다."
"한 그릇 더 먹을래."
호호 하하, 식탁은 늘 웃음꽃이 만발한다.

"언니들, 2시에 봐요."
등산을 제안한 것도 역시 옥이다. 그러면 우린 또 산 밑에 자동 집합이다. 누구말인데 거스를 수 있을까.
나무로 빽빽한 산은 여전히 눈이 쌓여있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올라 중간에서 한 번, 능선에서 한 번, 늘 쉬는 곳에서 오늘도 숨을 고른다. "언니, 청국장 맛있죠?" 함께 사서 나눈 청국장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새로 산 다운 점퍼 이야기로 우린 또 신바람이 난다. 

"언니, 내일은 10시 반이예요."
우린 내일, 옥이 덕분에 발왕산에 가기로 했다.
"모자 쓰고, 꼭 등산화 신고, 혹시 모르니 아이젠도 챙기고......" 옥이가 말했으니 집에 오자마자 모자와 장갑, 스틱 등을 챙겨놓는다. 배낭과 지갑, 여분의 손수건도 챙긴다.

집 안 깊숙히 들어온 햇살이 유난히 따뜻한 오후다. 일월말의 햇살인데 벌써 봄인가 싶을 정도다. 뭉치면 더 따뜻해지는 햇살같은 정. 일 년에 몇 번 보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마음 맞는 이웃이 있어 살 맛이 난다. 여기, 강원도에도 일치감치 봄이 찾아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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