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삐뚤빼뚤 글쓰기

다시 돌아온 스웨터

요술공주 셀리 2024. 2. 3. 13:14

엄마, 제발...... 치매 엄마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아 참 걱정이다.
"어머니께서 실을 사다 달라는데, 그래도 되나요?" 노치원의 복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 감사합니다." 쉬는 걸 못하시는 엄마는 손에서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8살 손녀 거라며 66 사이즈의 조끼를 뜨고, 작은 딸내미 줘야 한다며 어린애 사이즈의 스웨터를 짜신다. 완성하면 거실의 탁자에 가지런히 갖다 놓는데, 없어져도 찾지 않으신다. 그저 손을 놀리는 게 목적이어서, 큰 딸이 가져가도 관심이 없다. 아니, 당신이 뭘 떴는지 기억을 못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한 뭉치의 실을 사다드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실이 떨어졌다고 센터의 어르신에게, 실 산다고 돈을 빌리셨다고 한다. 생각이 들면 직진하는 치매의 증상. 고맙게도, 요양보호사가 실을 사다 주었다.

40년 지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왕수다의 단짝인 친구에게 엄마 이야기를 했더니 "속상했겠네. 네가 떠준 스웨터를 보내줄 테니 풀어서 엄마를 드려라." 한다. 몸이 커져서 작아진 스웨터를 입을 수가 없단다. "네가 직접 떠준 거라서 버릴 수가 없더라." 라며 택배로 스웨터를 보내 주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15년 전, 친구에게 선물로 떠 준 스웨터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다니. 이렇게 잘 떴단 말이야? 택배를 풀었을 때의 첫 느낌이다. 자기가 떠 놓고 잘 떴다고 자찬을 할 만큼 여전히 새것 같고 디자인조차 올드하지 않은 보기 드문 수작이니 말이다.

스웨터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전공을 달리 한 친구는 시골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우린 엄마가 되어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오랜만의 친구가 너무도 반가워, 한 땀 한 땀 떠서 선물했던 스웨터. 굵은 카키색 모와 초록 모헤어 실을 섞어 짠 외출용 겉옷이다. 손0완 스타일의 디자인인데, 밤색과 베이지색의 굵기가 다른 실로 수를 놓고 비즈로 장식을 한, 꽤 공들인 작품이다. 자주 입었다더니, 보관을 잘해준 친구 덕분에 여전히 새 옷 같고,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다. 스웨터를 풀어서 엄마에게 실로 드리기엔 아무래도 아까울 것 같다. 비즈와 수를 제거하기도 힘들겠지만 입어보니 내게도 아주 잘 어울린다. 엄마의 실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드리기로 하고 단추를 달아 그냥 내가 입기로 한다. 성당에 갈 때, 반 모임을 할 때 입을 생각을 하니 기쁨이 앞선다.

다시 돌아온 스웨터. 선물 한 이를 생각해 고이 간직해 준 친구가 고맙고, 이를 다시 돌려준 친구가 너무도 고맙다. 친구 덕분에 새 옷도 얻고, 우정도 확인한 신나는 오늘이다.


'삐뚤빼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쥐똥 나라, 땅콩 나라  (17) 2024.02.12
머피 때문인가, 샐리 때문인가  (20) 2024.02.07
성당에서 하루를  (24) 2024.02.02
게장인가, 게무침인가?  (34) 2024.02.01
발왕산의 요정  (30) 2024.01.31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