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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치다. 실내 온도 19도에 난로라니, 3월 하고도 중순이 넘었는데 뭔 난로를 때냐구.
아니야. 때가 뭐가 중요해? 네가 추우면 그래도 돼. 감기 걸려봐, 병원 가야지. 식욕도 없지, 일주일을 고생하는 걸. 그려, 그려. 나무 하나를 더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
강원도는 눈이 와야 강원도다. 펑 펑 사선으로 내리는 눈은 늘 축제다. 식전행사로 함박눈의 춤판이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는 눈꽃 축제. 겨울왕국 공연은 혼자 보기 아깝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나고, 새하얀 꽃 나라는 금방 사라지지만 거실에 앉아 눈멍을 할라치면 뛰는 심장을 어찌할 수가 없다.
생강나무를 필두로 애기 수선화가 수줍게 피어나면 개나리와 옥매화, 홍매화, 박태기가 와글와글 꽃망울을 터뜨린다. 라일락과 조팝, 황매화, 작약이 바통을 이어받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면 이제 여름이 온다. 달맞이꽃, 섬색시꽃, 백합과 톱풀, 족두리꽃, 우단동자, 으아리, 메리골드, 꽃범의 꼬리, 안개꽃 등이 뭉터기로 마라톤을 벌일 때면 꽃밭에 파묻혀 내가 이래도 되나 하며 축제를 즐긴다. 가을 단풍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미국에 살던 친구가 이곳 단풍을 보며 그랬다. "아니,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 숲이잖아." 산으로 둘러싸인 여긴 나무로 덮힌 숲. 붉고 노란 단풍이 소나무와 적절히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좁은 거실이지만 통창을 내길 잘했다. 같은 장소, 날마다 같은 의자에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 여름 휴가 때나 올 수 있었던 강원도.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다른 풍경을 날마다 볼 수 있으니 이런 횡재가 또 있을까? 산장 같고 리조트 같은 집에서 날마다 휴가요, 날마다 여행을 즐긴다.
여긴, 채소 가게가 바로 발 밑에 있다. 토마토, 딸기, 참외 수박은 유기농 직거래. 상추, 깻잎은 기본이요, 마음만 먹으면 양상추와 브로콜리, 샐러드와 비트쯤이야 말만 하면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오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모양이 좀 그렇지만 연하고, 부드럽고......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툭 따서, 찬물에 후루룩 씻어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된다. 부추를 싹둑 잘라 송송 썰어 미나리와 부침가루로 성글성글 버무려 프라이팬에 자글자글 부쳐내면 아이고, 혼자 먹기 아까운 고소한 부침개가 탄생한다. 상추와 깻잎, 미나리와 양상추를 손으로 뚝뚝 잘라 참기름 뿌린 고추장과 쓱쓱 비벼주면 한 그릇 뚝딱 비빔밥이 되는데, 이게 다 내 밭에서 나온 것이다.
"치, 자랑이 늘어졌구만." 라고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40대에 '타샤의 정원'을 읽고 생긴 꿈을, 40년 일을 하고서야 이뤘으니, 이쯤의 사치를 난 누려도 된다. 암, 암. 그렇고 말고......
한 움큼 비가 쏟아졌다. 촉촉이 젖은 대지와 자연이 나를 또 설레게 한다. 통통하게 살찐 할미꽃 새싹이 튀어나왔으니 꽃들의 마라톤이 곧 시작될 것이다. 대자연의 사치가 극에 다다를 때. 사치를 즐기러 마중 나갈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