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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용불용설

요술공주 셀리 2024. 3. 15. 15:23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이 생각나는 날이다. 낮은 곳에 먹이가 많을 땐 기린의 목이 짧았으나, 높은 곳의 먹이를 먹기 위해 기린의 목이 점점 길어졌다는 오래된 이야기. 생물의 몸은 사용하면 점점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더니, 겨우내 집 안에서 생활하다가 따뜻해진 날씨의 유혹으로 밖에서 일하다 보니 여간 힘들지 않다. 갑자기 어지럽지를 않나, 허리가 아프지를 않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노란 잔디밭에 제일 먼저 돋아난 잡초가 유난히 파랗게 눈에 들어온다. 아직 뿌리가 깊지 않아 뿔 뽑기 딱 좋을 때. 그런데 앉았다 일어나면 팽~, 어지럽다. 풀을 뽑기 위해 앉았다가 일어나면 또다시 팽~~, 한참을 서 있어야 어지러움이 없어지니, 이거 큰일이다 싶어 겁이 벌컥 난다. 풀 뽑기 stop!

정원을 늘리고, 들쑥날쑥 입체적인 정원을 만든다고 받아놓은 흙더미에서 한 양동이의 흙을 퍼다 날랐다. 겨우 한 양동이의 흙인데도, 아이고 허리야! 풀 뽑기도, 흙 나르기도 버겁기만 하다. 흙 나르기도 일단 stop!
잔디에서 뽑은 풀 한 주먹, 한 양동이의 흙을 겨우 날랐을 뿐이다.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근육이 놀란 것일까? 이래서야 어디 바깥일을 언제 다 할 수 있으려나?
어제, 오늘 이틀을 움직였으니 나도 계속 일하다보면,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근육도 풀리고 힘도 길러질 수 있을까? 목이 길어진 기린처럼 팔다리에 근육이 팍팍 생겨날 수 있을까?

어젠 페인트칠을, 오늘은 흙을 돋우고 전지를 해주었다. 옆집 경계를 훌쩍 넘어간 키 큰 개나리 가지를 잘라주고, 무성해진 가지도 정돈해 주었다. 하루에 한 편씩 돌려보는 유튜브의 가르침대로 나무마다 거름도 뿌려주었다. 힘을 쓰는 일만 계속하기, 앉았다 일어나는 일 반복하기, 서 있는 일만 계속 하기 등. 뭐든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일은 젊은 이들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힘든 일 하나 하고 난 다음엔 전지를 하고, 서 있는 일을 한 뒤엔 뿔 뽑기를 하는 식의 일. 그도 요령이라면, 그렇게 해봐야겠다.
 
아침에 입던 솜바지를 입고, 목엔 손수건까지 두르고 일을 했더니, 어휴 더워라.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서야 진정을 한다. 그러고보니 날마다 때던 난로를 오늘은 피우지 않았다. 부지런해진 햇볕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타나서 오래 머물고, 따뜻함까지 보태주는 햇볕이다. 말채나무 가지를 전지 하다가 발견한 생강나무 노오란 꽃봉오리. 우왕, 생강나무에도 봄볕이 매달렸구나. 햇볕. 너도 용불용설, 하루 종일 바삐 돌아다니더니 생강나무에 감히 꽃을 선사했네.
강원도에도 이제, 꽃이 피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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