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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일기(3.12)

요술공주 셀리 2024. 3. 12. 09:06

옥이의 솜씨는 늘 기대 이상이다. 엄마가 작년에 떠 준 여름 가방이 old 한 느낌이 들어 팽개쳐 두었는데 옥이가 그걸 싸~악 고쳐가져 왔다. 가방 밑바닥에 깔개를 붙였을 뿐인데, 모양도 크기도 쏙 마음에 든다. 뜨개는 엄마가, 바느질은 옥이가 역시 최고다.

생일잔치를 하고 남은 약식과 묵을, 언니는 또 바리바리 싸서 옥이 한 덩이, 생일 주인공이라고 난 두 덩이를 들려 보냈다. 언제부턴가 우린 연애하는 것 같기도, 사귀는 것 같은 관계 더니, 근래엔 친정 식구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끼 먹을 양보다 더 많이 해서 서로를 챙기고 나누는 자매들. 큰 언니, 작은 언니, 막냇동생 세 자매 같다.

93세, 89세 부모님이 걸어가신다. 오늘도 건강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로 손이 모아진다. 요양보호센터의 차가 집 앞까지 모시러 오는데도 굳이 길 모퉁이까지 걸어가시는 부모님. 부모님도 봄이 좋으신 게다.

"오후에 비 온다던데, 산에 가자."라고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어젯밤 헤어진 우린, 오늘 아침에 다시 만났다. 새로 개발한 코스, 화전민 집터까지는 가파른 계곡이어서 조금만 오르려도 숨이 차다. 오르다 쉬다를 여러 차례. 그런데 중턱에서 그만 봄비를 만났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후드득, 제법 옷을 적셔오는데도 우린 재잘재잘.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 같다. 모자와 점퍼에 촉촉이 젖은 봄비. "봄비라서 그런가? 젖어도 좋네." 콧등의 빗물을 훔치며 옥이가 환하게 웃는다.
맞아, 우리 사람도 그래야지. 겨우내 묵혔던 칙칙한 마음의 때도 벗기고, 막혔던 목마름이 있다면 그도 좀 채워야겠지. 모자부터 패딩점퍼까지 비에 젖은 5명의 어른들이라니...... ㅋㅋㅋ 땅도 웃고, 나무도 웃고, 하늘도 키득키득. 평균나이 반백살 넘는 우린, 봄비 마중 나온 자연에게 비에 젖은 생쥐 같은 모습으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또로록또로록. 꺄르륵꺄르륵. 빗방울 소린지, 봄비에 간지럼 타는 나뭇가지 웃음소린지, 사람도 웃고 나무들도 웃으니, 산등성이 가득 웃음소리 천지다.

미소를 머금고, 물기를 머금은 대지. 봄비에 젖은 대지엔 초록의 새싹이 꿈틀거린다. 비 그치자 날아온 까마귀와 딱새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이 나무 저나무를 옮겨 다니며 봄을 전파하는 새들 때문에 이제, 와글와글 봄 맞이할 꽃들이 바빠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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