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삐뚤빼뚤 글쓰기

일기(3.13)

요술공주 셀리 2024. 3. 13. 12:23

강원도살이 3년 차. 나도 이제 그 정도쯤 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서리꽃이 새하얗다."오늘 햇볕은 볼만하겠군." 서리꽃이 많고 흴수록 햇볕은 더 풍성해진다.
새벽부터 등산을 한 해님이 앞산을 비집고 우리 집에 들어왔다. 9시도 안 되어 햇살이 가득하다. 눈도 많고 비도 많았던 2월이었다. 오랜만의 햇살에 또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또 뭘 해야 할까? 수첩에 빼곡히 적어 놓은 대부분의 봄맞이 일은 아직은 좀 이른 듯하니, 오늘은 너 사슴이 주인공이다.
눈과 비를 피해 데크에 보관했던 사슴 모자를 잔디밭에 데려다 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나무가 잘 건조되었다 생각되어 아크릴 물감을 칠해주기 위해서다. 고유의 나무 색깔이 자연스러워 제일 예쁘지만, 사슴을 오래 보기 위해서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굳이 페인팅을 하는 것은, 비를 맞으면 곰팡이가 피는데, 이를 방지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함이다. 엄마 사슴 페인팅이라? 네 개의 다리를 칠하기가 시간이 걸리지만 후다닥 흰색을 칠해주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 그렇다면? 입과 귀, 그리고 꼬리, 배와 발은 황금색을 칠해 주었다. 와! 그런데 이럴 수가. 붓칠 한 번 했다고 신분상승이라니, 서민 사슴이 단박에 왕비 사슴으로 변신. 따라온 아기 사슴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백설공주와 거지 왕자라니...... 초라한 거지왕자의 신분도 높여주어야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페인트칠을 하려면 우선, 나무 표피를 벗겨주어야 하는데 몇 달 전에 생나무로 만든 아기사슴의 표피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표피를 제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모진 풍파를 거쳐야 엄마처럼 될 수 있다니 아기 사슴아, 왕자가 되려면 기다릴 수밖에.

빨래를 해서 햇볕에 널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님을 바라본다. 손짓하는 해님을 따라 밖으로 나가 다시 또 정원 정리를 한다. 푹 패인 곳에 흙을 날라다 부어주니 잘 정돈된 꽃밭이 된다. 손이 한 번 가면 달라지는 집안일이다. 그래서 무거운 흙도 나르고, 더 무거운 돌멩이도 날라다 일을 하다 보니, 봄볕에 얼굴이 까맣게 되는데도, 서민 사슴이 왕비가 되는 미라클 때문에 또 몸을 움직이게 된다.
봄바람이 살랑인다. 바람에 실려오는 역한 냄새, 지독한 거름 냄새다. 엊그제 거름을 폈다는 이웃 밭에서 날아오는 거름냄새가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다. 밖에 더 머물고 싶지만, 냄새와 강풍으로 변한 바람 때문에 피신을 해야겠다. 봄에 이렇게 바람이 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거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주어야 새 이파리가 깨어난단다. 휴우, 집 안까지 따라오는 냄새. 아, 그렇지. 이 또한 봄이 되었다는 신호다. 양분이 풍부한 땅에 작물을 심을 때가 가까워 온 것이다. 초록을 보려면 거름냄새쯤이야, 꽃샘 바람쯤이야......
어제 마셨던 따끈한 꿀차를 마실까 하다가, 콜라를 따라 마신다. 오늘은 시원한 콜라가 더 당기는 날이다.



'삐뚤빼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넓히기는 늘 버거워  (22) 2024.03.16
용불용설  (18) 2024.03.15
일기(3.12)  (17) 2024.03.12
날마다 생일  (24) 2024.03.11
산달래  (19) 2024.03.08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