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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글쓰기

끼어들기 릴레이

요술공주 셀리 2024. 5. 30. 11:47

와, 오늘은 휴식이다. 합창 연습도 없고, 저녁에 있던 모임도 취소되었으니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자. 이불속에서 더 누워있다가 아침부터 느리 적 느리 적.
늘 그렇듯이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들고 정원을 둘러본다. 커피 잔을 들은 채 에잇, 나쁜 풀 같으니라고 하면서 허리를 굽혀 풀을 뽑는다. 그러다가 어이쿠, 풀인 줄 알았는데 아스타를 뽑았다. 어머나, 미안해라 호미를 가져와 땅을 파서 다시 심어주고 마시던 커피를 부어주었다. 꼭 살아야 하느니라.

그런데, 그 호미가 화근이 될 줄이야......
정원 한 바퀴를 돌다가 다다른 곳은 밭과 인접한 잔디밭. 며칠 전, 잔디밭 가운데 토끼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토끼풀은 내버려 두면 순식간에 잔디를 잠식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제거해줘야 한다. 이미 세 곳으로 번진 토끼풀을 뽑아주고 나무그늘의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집의 전경을 바라보는데 참 흐뭇하다. 5년 전에 심은 셀릭스와 백당나무, 가막살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내주었고, 시간의 작품인 무성한 초록이 감사하다고 생각할 때, 눈에 들어온 해바라기. 엄마가 씨를 뿌린 해바라기가 어느새 오밀조밀 모종으로 자랐다. 세 그루를 반대쪽 땅에 옮겨주었다. 뭐야, 웬 풀이 이렇게 많아진 거야? 무성한 잡초가 또 눈에 띄었으니, 호미도 들었겠다 팍팍 호미질이다.
 

 

왜 호미를 들었냐고. 왜 하필 오늘 제비꽃 군락이 눈에 띄었냐고......
편백나무 아래에 큼직한 제비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우선, 보이는 대로 뽑아 없앴다. 그러나 사방팔방이 잡초투성이. 호미가 가만있질 않는다. 자동으로 작동하는 호미, 콕콕콕 팍팍팍... 이마에 땀이 차기 시작하자 아,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옮겨 심은 해바라기가 축 쳐져있다. 앗, 물을 안 줬네. 호스를 끌어다 물을 준다. 잘 자라거라, 노란 꽃도 펴주렴.

그런데, 얼마 전 사다 심은 단호박 모종이 또 내 발목을 잡아당긴다. 나도 물 좀 주세요 한다. 그래 너도 물 좀 마시거라. 해바라기에 이어 단호박에도 흠뻑 물을 뿌려 주었다.
 



여기서 마무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단호박 옆에 핀 씀바귀꽃을 뜯다가 민들레를 봤으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뽑아줘야 한다. 민들레꽃이 홀씨가 되면 사방천지가 민들레밭이 되어버리니 난 민들레의 천적이 될 수밖에......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민들레를 캐는데 가느다란 뿌리 한 다발이 뽑혀 나온다. 여기를 파면 또 뿌리가 딸려 나오고 이어서 파면 뿌리가 또 딸려 나온다. 뿌리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홀씨는 없으나 뿌리로 번식하는 놈. 한 군데 생기면 금세 군락을 이루는 민들레 친척 씀바귀다. 캐도 캐도 나오는 씀바귀. 굵은 놈, 가는 놈 한 뿌리도 남기지 않고 캐냈으니, 오늘은 내가 승자다.
 



"엄마! 전화받으세요." 아들이 부르지 않았다면 난 또 풀을 뽑고 있었을 게다. 커피를 들고 9시쯤 나갔는데 10시 50분이다. 시작은 북쪽 꽃밭이었는데 동쪽 잔디밭에서 토끼풀을 뽑고, 옆댕구리의 해바라기를 옮기다 서쪽의 제비꽃을, 그리고 단호박으로 갈아탔다가 결국 남쪽의 씀바귀 뿌리까지 캐냈다. 그렇게 오전 내내 풀 뽑느라 시간을 보냈으니 오늘 뭐, 여유가 있다고? 오랜만에 휴식이라고? 아이고, 이 할머니야. 뭔 말씀을...... 

홀린 듯이 오전 내 일한 것은 그나마 구름 낀 날씨 덕분이었다. 호미로 휘젓고 다닌 곳은 깨끗이 정돈이 되었다. 그럼 됐지 뭐. 이제부터 쉬면 되지 뭐. 오후엔 진짜 쉬자꾸나 한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시작한 풀 뽑기.
시작은 미미했으나, 동서남북을 휘젓고 다닌 강원도 할머니의 결과는? 창대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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